2-1재료가 작품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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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사람, 새기는 사람, 찍는 사람, 파는 사람 — 일본 다색 판화 한 장에는 네 직업이 필요했습니다.
판화 한 장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일본의 다색 판화(우키요에)에는 도안가·조각사·인쇄사·출판인 네 전문가가 필요했고, 출판인이 상업 사업으로 주제와 질을 정했습니다. S1
도안을 얇은 반투명 종이에 옮겨 판(대개 벚나무)에 붙이면, 조각사가 선과 색 칠할 면만 남기고 깎아 냅니다. 잉크를 바르고 종이 뒤를 둥근 패드로 문질러 찍습니다. S1 도안 사본은 뒤집어 붙여 파내는 동안 없어지므로 남은 것이 드뭅니다. S2 윤곽만 새긴 첫 판을 윤곽선만 새긴 첫 판. 여기서 찍은 교정쇄로 색판을 만듭니다이라 하고, 그 교정쇄로 색판을 정합니다. S2·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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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한 장이 만들어지는 순서입니다.
색마다 판이 한 장씩, 많게는 20장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판을 정확히 겹치려고 판 가장자리에 칼금 두 개로 종이를 판마다 같은 위치에 놓게 하는 맞춤 표시를 냈습니다. S1 판은 자원을 아끼려 보통 양면에 새겼고, 옅은 색부터 찍고 짙은 색을 나중에 찍었습니다. S5 종이 뒤를 문지르는 도구 단단히 감은 줄 심을 대나무 껍질로 싼 둥근 인쇄 도구도 있었습니다. S4


눌러 보기 · 지점 4곳
- 1가는 선을 새기는 사람 도안 종이를 통해 판에 선을 새김
- 2끌과 망치 필요 없는 나무를 파냄
- 3풀먹임 종이에 풀을 먹임
- 4인쇄사 준비를 기다림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직인들 (Artisans, from the series An Up-to-Date Parody of the Four Classes - 우타가와 구니사다, 1850)」: 직인 계층을 여성으로 바꿔 그린 판화 공방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에 따르면 오른쪽 여성은 도안 종이를 통해 판에 가는 선을 새기고, 가운데 여성은 끌과 망치로 나무를 파내며, 앞의 여성은 종이에 풀을 먹이고, 왼쪽 인쇄사는 준비를 기다립니다. S22
우타가와 구니사다, 「직인들」, 19세기, 삼폭 다색 목판화, 각 25.4×36.8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3495a–c,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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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한 장에 필요했던 전문가는 몇 직종일까요?
도안가·조각사·인쇄사·출판인 넷입니다.
한국에도 같은 원리로 만든 거대한 판이 있습니다. 고려는 1237~1248년 몽골 침입에 맞서 부처의 힘에 기대려고 약 8만 장의 경판을 새겼습니다. S17 재질은 산벚나무가 주종이고, 한 장은 세로 24cm, 가로 68~78cm, 두께 2.5~3cm, 무게 약 3kg입니다. S18 글씨를 쓴 원본 종이를 뒤집어 판에 붙이고 새기는데, 마르면 글씨가 잘 안 보여 들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을 얇게 발랐습니다. 숙련된 새김꾼도 하루에 약 40자를 새겼습니다. S19 생나무를 소금물에 삶고 쪄서 말렸다고 전해집니다. 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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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대장경판이 만들어진 순서입니다.
숫자 하나
81,258장 — 해인사 대장경판의 수. 한 면 약 320자, 앞뒤 합쳐 약 640자, 전체 약 5,200만 자 S19·S20


해인사 판전 안 선반에 거무스름한 경판이 책처럼 세로로 꽂혀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15세기에 지은 이 판전이 자연 통풍과 온습도 조절로 500년 넘게 쥐와 벌레 피해를 막았다고 설명합니다. S17
Bernard Gagnon, 해인사 판전 내부 사진 — 위키미디어 공용, CC0 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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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에 가장 많이 쓰인 나무는?
현미경 조사로 산벚나무가 64%, 돌배나무가 15%로 나왔습니다. 자작나무라는 통설과 다릅니다.
2-2물성 프로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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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은 남긴 면만 찍습니다. 그래서 판은 늘 그림의 거울상이고, 판이 닳으면 다시 새겨야 합니다.
| 성질 | 목판화에서 | 근거 |
|---|---|---|
| 찍히는 원리 | 볼록 남은 면에 잉크 — 깎은 곳은 하얗게 남음 | S6·S9 |
| 판의 나무 | 일본은 결이 곱고 단단한 벚나무, 고려는 산벚·돌배, 뒤러 판은 배나무 | S2·S3·S19·S7 |
| 결 방향 | 목판은 나뭇결을 따라 자른 판에, 목판 조각은 회양목 마구리에 | S9·S10 |
| 층 쌓기 | 색마다 판 한 장, 최대 20장 | S1 |
| 수명 | 판이 닳을 때까지 수천 장. 뒤러 판은 사후 1세기 넘게 쓰이며 닳은 곳을 다시 새김 | S1·S7 |
| 종이 | 닥나무 안쪽 껍질 종이 — 여러 번 문질러도 견디고 잉크를 잘 빨아들임 | S1 |



눌러 보기 · 지점 2곳
- 1성 판에서는 왼쪽 위 — 종이에서는 오른쪽 위
- 2사자 갈기 볼록하게 남은 가는 선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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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목에서 찍힌 그림은 판 위의 그림과 좌우가 어떨까요?
판을 종이에 엎어 찍기 때문에 좌우가 뒤집힙니다. 판목 사진의 성은 왼쪽 위, 인쇄본에서는 오른쪽 위에 있습니다.
뒤러의 판목 사진과 인쇄본을 겹쳐 밀어 보세요. 판에서 왼쪽 위에 있던 성이 종이에서는 오른쪽 위로 갑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판이 뒤러가 죽은 뒤에도 1세기 넘게 쓰이며 닳은 곳을 다시 새겼고, 뒤러가 직접 새겼는지 도안만 했는지는 풀리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S7



왼쪽 판목에는 두 인물의 윤곽선이 볼록하게 남았고, 배경은 칼로 거칠게 판 자국이 물결처럼 보입니다. 오른쪽은 같은 레코드에 실린 인쇄 사진으로, 판을 좌우로 뒤집으면 인물 배치가 같습니다. 레코드 제목에는 '다시 새긴 판?'이라는 물음이 붙어 있습니다. S25
우타마로 판화용 판목(recut?), 19세기 초, 나무, 33.8×24.1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33.76.1, 공개 도메인





왼쪽은 「용궁의 시종들: 물고기와 조개 판목 (Original Woodblocks for the Servants of the Dragon King of the Sea: Fish and Shells - 구와가타 게이사이, 1800)」, 오른쪽은 그 판으로 찍은 「용궁의 시종들: 물고기와 조개 (The Servants of the Dragon King of the Sea: Fish and Shells - 구와가타 게이사이, 1802)」의 한 펼침면입니다. 검게 변한 판 위의 전복과 조개가 책에서는 좌우가 바뀌어 찍혔습니다. S26·S27
구와가타 게이사이, 판목 4점(1800년 무렵, 액자 포함 각 35×23 cm)·책(1802, 24.7×17.5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3.776a–d · 2013.778, 공개 도메인
2-3재료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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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글을 퍼뜨리는 도구였고, 나중에 그림의 매체가 되었습니다.
연표 · 끌어 보기
- 751년 무렵신라 석가탑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목판 권자본 S21
- 764~770년 무렵일본 백만탑 다라니 — 청동판인지 목판인지 논쟁 S16
- 868『금강경』 — 날짜가 적힌 가장 이른 인쇄본 S15
- 1007고려 총지사판 S21
- 1237~1248고려 대장경판 새김 S17
- 14세기 말유럽에서 종이에 목판 인쇄 S9
- 1460년대네덜란드·독일 블록북 S28
- 1497~98뒤러 「삼손과 사자」 S7
- 1509년 무렵부르크마이어의 키아로스쿠로 목판 S6
- 1765일본 다색 판화 완성 S1
- 1820년대 후반프러시안 블루 보급 S3
- 1830~32호쿠사이 「높은 파도」 S13
- 1853일본 개항 — 우키요에가 서양으로 S12
- 1890파리 에콜 데 보자르 우키요에 전시 S12
목판은 무엇을 찍는 데서 시작했을까요? 일본에서 목판은 8세기부터 불경 같은 글을 퍼뜨리는 데 쓰였고, 18세기까지 주로 글을 복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S1 한국의 초기 인쇄도 목판에서 시작했고,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51년 무렵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봅니다. S21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764~770년 무렵)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청동판에서 찍었을 가능성이 높고 일부 학자는 목판이라 주장한다고 적습니다. S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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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가운데 '날짜가 적힌 가장 이른 인쇄본'으로 불리는 것은?
영국도서관은 868년 『금강경』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직지와 구텐베르크 성서는 활자 인쇄, 대장경판은 13세기입니다.
「금강경 (The Diamond Sutra - 미상, 868)」: 오른쪽에 가운데 앉은 부처와 둘러선 인물들을 가는 선으로 새긴 권두 그림이, 왼쪽에 세로로 줄지은 한자 본문이 있습니다. 영국도서관은 이 두루마리를 세계에서 날짜가 적힌 가장 이른 인쇄본이라 소개하고, 1907년 둔황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적습니다. S15
『금강경』, 868, 종이에 목판 인쇄, 두루마리 — 영국도서관 Or.8210/P.2, 위키미디어 공용, CC0


「춘수당 시집 판목 (Woodblock of Collected Poems of the House of Springtime Sleep - 미상, 1850)」: 길쭉한 나무판 양 끝에 통나무 손잡이가 붙었고, 판면에 세로줄 한자가 거울 글자로 빽빽합니다. S29
미상, 「춘수당 시집 판목」, 19세기, 나무, 23.2×48.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08.56, 공개 도메인
유럽에서는 12세기부터 직물에, 14세기 말부터 종이에 목판 그림을 찍었습니다. S9 1460년대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글과 그림을 한 판에 새긴 글과 그림을 나무판 한 장에 함께 새겨 찍은 15세기 책이 나왔습니다. S28


대표 색
- 손으로 올린 초록(육안)
#6E9A5A - 손으로 올린 주황(육안)
#D9744A - 손으로 올린 노랑(육안)
#E3C35A
「요한 묵시록 블록북 제4판의 한 쪽 (The Mountain and the Star Fall into the Sea, Apocalypsis Sancti Johannis block book - 미상, 1465)」: 두 천사가 나팔을 불고, 불타는 산과 배가 보입니다. 굵은 윤곽 안에 초록·주황·노랑을 손으로 올렸고, 말풍선 띠의 글도 같은 판에 새겼습니다. S24
독일, '요한 묵시록' 블록북 제4판, 1460~70, 목판화에 손채색, 12.8×19.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31.54.188, 공개 도메인
그 굵은 윤곽을 넘어선 사람이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뒤러가 목판을 흑백만으로도 계조와 질감을 내는 완성된 작품으로 바꿨다고 설명합니다. 사자 갈기의 가는 선 하나하나는 선 양쪽의 나무를 파내서 만든 것입니다. S6·S8 같은 시대 학자 에라스뮈스는 여기에 색을 더하면 작품을 "해칠" 것이라 했습니다. S6




「삼손과 사자 (Samson Rending the Lion - 알브레히트 뒤러, 1497)」: 상아색 종이 위에 왼쪽 나무, 오른쪽 위 성, 아래 가운데 사자 갈기에 가는 선을 촘촘히 모아 명암을 만들었습니다. S8
알브레히트 뒤러, 「삼손과 사자」, 1497~98년 무렵, 목판화, 종이 40.6×30.2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4.63.111, 공개 도메인 · 판목 「삼손과 사자 판목 (Woodblock for Samson Rending the Lion - 알브레히트 뒤러, 1497)」, 배나무, 39.1×27.9×2.5 cm — 19.7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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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는 뒤러 목판에 색을 더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을까요?
흑백 선만으로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1509년 무렵에는 부르크마이어가 선 판에 톤 판을 겹친 키아로스쿠로 목판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765년 새 기술로 여러 색을 한 장에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흑백 판에 손으로 색을 칠했고, 1740년대에 분홍·초록 판이 더해졌습니다. S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들이 대량으로 만들 수 있었고 주로 부유한 도시민이 좋아했다고 적습니다. S1 1820년대 후반에는 안정되고 빛에 강한 인공 파랑, 프러시안 블루가 널리 퍼졌습니다. S3 호쿠사이는 1830년 일흔 살에 '후가쿠 36경'을 시작하며 새로 값싸진 이 파랑을 많이 썼습니다. S14
2-4선택의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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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퍼뜨려야 할 때, 그리고 단단한 윤곽이 필요할 때 목판을 골랐습니다.
- 많이 퍼뜨리려고: 일본에서 목판은 8세기부터 불경을 퍼뜨렸고 S1, 판은 닳을 때까지 수천 장을 찍었습니다. S1 에도의 풍경 판화는 여행 문화와 도로망 덕에 값싼 기념품으로 팔렸습니다. S2
- 염원을 담으려고: 고려 대장경판은 몽골 침입에 맞서 부처의 권위에 호소하며 새겼습니다. S17
- 조건의 제약 때문에: 가는 선은 눌려 부러지기 쉬워, 초기 유럽 목판은 굵은 윤곽과 최소 음영으로 "색칠 공부 책"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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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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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른'이라는 말은 조건을 붙여야 합니다.
날짜가 적힌 가장 이른 인쇄본은 868년 중국의 『금강경』입니다. S15 그보다 이른 인쇄물로 신라 석가탑의 다라니경(751년 무렵 이전) S21과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764~770년 무렵)가 있지만, 뒤의 것은 목판인지조차 논쟁 중입니다. S16 유럽의 첫 거친 목판화는 1400년 이전에 나왔습니다. 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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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순으로 놓아 보세요.
2-6알아보는 법 — 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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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판에서 찍어도 두 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판을 닦아 만드는 그라데이션이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호쿠사이의 큰 파도는 같은 판으로 찍은 인쇄본이 여러 장 남아 있습니다. 영국박물관은 하늘이나 수평선의 그라데이션(인쇄사가 판의 안료를 손으로 닦아 내어 만드는 번지는 색)을 인쇄사가 손으로 만들므로 두 인쇄본이 똑같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S3





대표 색
- 아이보리 종이
#EFE5CA - 청회색 파도
#4E677B - 연한 회청
#B3BBB4

대표 색
- 누르스름한 종이
#E3D0B2 - 탁한 청회색 파도
#596976 - 회색
#AFB3A7



- 후지산의 높이
- 큰 파도의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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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쇄본 가운데 배가 노란빛인 것은?
JP1847의 배는 연한 분홍, JP2569의 배는 노란빛입니다.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Under the Wave off Kanagawa -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1)」 두 인쇄본입니다. 왼쪽은 아이보리 종이에 분홍빛 배, 오른쪽은 누르스름한 종이에 노란 배와 어둡게 번진 수평선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파도 속 후지산을 작은 삼각형으로 보이게 한 원근을 짚고, 쪽빛과 수입 프러시안 블루를 썼다고 적습니다. S13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30~32년 무렵, 다색 목판화, 25.7×37.9 cm · 25.4×38.1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1847 · JP2569, 공개 도메인
목판(woodcut)과 단단한 회양목을 가로로 자른 단면(마구리)에 조각칼로 선을 새기는 판화. 19세기 책·신문 삽화에 널리 쓰임은 다릅니다. 목판은 결을 따라 자른 판에서 배경을 깎고 선을 남기지만, 목판 조각은 마구리에 선을 새겨 아주 가는 선을 냅니다. S9·S10




「펀치 그릇 둘레의 남자들 (Men seated around a punch bowl, with a hunter offering a toast - 토머스 뷰익, 1800)」: 손바닥만 한 종이에 식탁에 둘러앉은 남자 여섯과 개 세 마리가 일정한 굵기의 가는 선으로 새겨졌습니다. 레코드는 새긴 사람을 '뷰익(?)'으로 물음표를 붙여 적습니다. S11
토머스 뷰익(?), 「펀치 그릇 둘레의 남자들」, 1790~1828, 목판 조각, 6.2×9.7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9.533.147, 공개 도메인
이 문서의 두 감별 기준은 「삼손과 사자」·호쿠사이 두 인쇄본·게이사이 판목과 책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근거 대기 나뭇결, 가장자리 눌림, 색판 어긋남으로 동판화와 가르는 법은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처음의 큰 파도로 돌아갑니다.
"세계 미술의 아이콘"은 에도에서 여행 기념으로 팔리던 인쇄물이었습니다. S13·S2 네 직업이 나눠 만들었고, 같은 판에서 찍은 두 장도 종이 색과 그라데이션이 달랐습니다.
S1·S3 1853년 일본이 항구를 연 뒤 이 판화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단순한 일상 소재도 장식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S12 나무를 깎아 남긴 곳만 찍는다는 한 가지 원리가 불경의 글자에서 큰 파도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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