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재료가 작품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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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졸이고, 색을 갈고, 칠하고, 며칠 쉬었다가 다시 칠합니다.
유화 한 장은 어떤 순서로 만들어질까요? 14세기 말 이탈리아 화가 첸니노 첸니니가 쓴 기법서 『예술의 책』이 그 순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유화를 "독일인들이 많이 쓰는" 기법이라 부르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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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니니 『예술의 책』 91~93장의 순서입니다
- 아마씨유를 불에 올려 반으로 졸입니다. 8월의 햇볕에 두어 졸이면 더 좋다고 했습니다. S3
- 색가루를 기름에 갈아 납이나 주석으로 만든 작은 그릇에 담아 둡니다. S3
- 밝은색·중간색·어두운색을 아주 뻑뻑하게 나란히 칠하고 섞습니다. S3
- 며칠 쉬었다가 돌아와, 물감이 어떻게 덮였는지 보고 필요한 곳을 다시 칠합니다. 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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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stop for a few days and return again to your work, see how the paint covers, and repaint where necessary.
며칠 쉬었다가 다시 작업으로 돌아와, 물감이 어떻게 덮였는지 보고 필요한 곳을 다시 칠하라.
Cennini, Il Libro dell'Arte, Herringham 영역(1899) 93장
왜 며칠을 쉬어야 했을까요? 기름은 공기 중 산소를 빨아들이며 굳는데, 처음에는 느리고 중간에 빨라졌다가 다시 느려집니다. 열과 빛, 건조를 돕는 첨가물이 이 과정을 앞당깁니다. S2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얇은 층은 며칠이면 마르지만, 마른 뒤에도 수십 년 동안 계속 단단해진다고 설명합니다. S4
다음으로 그림을 받치는 바탕을 정해야 했습니다.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주로 참나무 판에 그렸습니다. 1434년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 - 얀 반 에이크, 1434)」도 참나무 판의 유화입니다. S7 물감 아래 밑그림을 비춰 보는 사람 눈에 안 보이는 빛으로 물감 아래 밑그림을 찍는 방법는 이 그림의 얼굴과 손발 위치를 여러 번 고친 흔적을 찾았습니다. 천천히 마르는 물감이라 그리면서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S8·S4
그 위에는 층을 쌓았습니다. 16세기 초 플랑드르 화가 마생스는 붉은 겉옷 하나를 칠하려고 흰 바탕 위에 회색 밑층을 깔고, 그 위에 투명한 붉은색을 올렸습니다. 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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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플랑드르 화가 마생스의 붉은 겉옷 단면을 아래에서 위로 쌓은 순서입니다(Spring 외 2017)
숫자 하나
4층 — 16세기 초 화가 마생스가 붉은 겉옷 하나를 칠하려고 아래에서 위로 쌓은 층의 수 S7
마지막으로, 물감을 담는 그릇은 19세기에 바뀌었습니다. 1841년 미국 화가 존 랜드는 짜면 찌그러지며 공기를 막는 금속 튜브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S5

여러 색의 유화 물감 튜브입니다. 짜서 쓰는 금속 튜브는 1841년 특허에서 나왔습니다.
사진: W.carter, "Various colors of oil paint tubes 4", 2026 —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4.0
2-2물성 프로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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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마르고, 겹쳐 쌓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누레지고 갈라집니다.
| 필드 | 유화 | 근거 |
|---|---|---|
| 건조 | 산소를 흡수해 굳음. 얇은 층은 며칠, 두꺼운 층은 오래, 마른 뒤에도 수십 년 단단해짐. 색마다 건조 속도가 다름 | S2·S4 |
| 층 쌓기 | 얇은 투명 층(글레이즈)을 겹쳐 색을 바꿈. 비치는 색가루를 두껍게 써서 가릴 수는 있지만, 가리는 색가루를 비치게 쓸 수는 없음 | S2·S9 |
| 수정 | 천천히 마르는 동안 고쳐 가며 점점 그려 나갈 수 있음 | S4·S3 |
| 발색·변색 | 기름 자체가 시간이 지나며 누레짐 — 19세기 영국 연구자 이스트레이크는 이것을 유화의 "피할 수 없는 결함"이라 불렀음 | S1·S2 |
| 표면 | 두껍게 쌓은 임파스토는 붓 자국이 솟지만 보존에는 위험 | S2·S9 |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용어집은 얇게 비치는 칠과 두껍게 솟는 칠을 함께 쓸 수 있다는 것을 유화의 성질로 듭니다. 카드의 세 낱말이 그 칠들입니다. S9
두꺼운 칠은 사진으로도 확인됩니다. X선은 물감 층을 꿰뚫어 찍는 사진이라, 납이 든 흰 물감을 두껍게 칠한 곳이 하얗게 보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플로라 (Flora - 렘브란트, 1654년경)」를 X선과 겹쳐 보면 흰 소매가 특히 하얗게 떠오릅니다. S12


「플로라 (Flora - 렘브란트, 1654년경)」와 그 X선 사진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의 "어두운 색조와 거친 붓 처리"가 렘브란트 자신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S12
렘브란트, 「플로라」, 1654년경, 캔버스에 유채, 100×91.8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6.101.10, 공개 도메인 · X선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증, 위키미디어 공용, CC0
네덜란드 출신 화가 반 고흐는 붓 자국을 더 세웠습니다. 그는 1889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삼나무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 빈센트 반 고흐, 1889)」의 삼나무를 다른 화가 몽티셀리의 그림처럼 두껍게 칠했다고 적었습니다. S12

「삼나무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 빈센트 반 고흐, 1889)」: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두꺼운 붓 자국으로 솟아 있고, 오른쪽에 짙은 초록 삼나무가 섰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삼나무가 있는 밀밭」, 1889, 캔버스에 유채, 73.2×93.4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93.132, 공개 도메인


같은 그림 전체를 X선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소용돌이치는 붓 자국이 흰 물결로 남아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증 X선 사진(1993.132), 위키미디어 공용, CC0
2-3재료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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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는 한 사람이 발명한 물감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쌓인 기술입니다.
유화는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미술사가 찰스 이스트레이크는 『유화사 자료』(1847)에서 유화의 '발명'은 한 시점이 아니라 지식이 쌓인 결과라고 정리했습니다. S1 13세기 초의 기법서들이 이미 아마씨유를 다루고 있고 S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유화 기록이 12세기 북유럽부터 있다고 적습니다. S6
연표 · 끌어 보기
- 7세기 중반바미얀 석굴 벽화에서 건성유가 나왔다는 보고(◐) S15
- 12세기북유럽의 유화 기록 S6
- 14세기 말첸니니가 유화를 '독일인들이 많이 쓰는' 기법으로 기록 S3
- 1434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초상(참나무 판 유화) S7
- 1445년경나폴리의 콜란토니오가 유화 기법을 씀 S6
- 1448발렌시아의 기록에서 반 에이크의 유화가 아직 신기한 것으로 나옴 S6
- 1460년대베네치아의 벨리니가 유화를 씀 S6
- 1565브뤼헐의 추수하는 사람들 S6
- 1803~04코발트 블루 첫 조제 S13
- 1841접이식 금속 물감 튜브 특허 S5
- 1889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 S12
- 1910년대한국의 첫 유화가들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옴 S10
연표
그렇다면 반 에이크는 무엇을 했을까요? 이스트레이크는 "반 에이크가 기름을 발명했다"는 이탈리아 저자들의 말이 앞선 시도를 간과한 오해라고 썼습니다. S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반 에이크가 판 위에 유화를 다루는 솜씨로 전환점이 되었고, 그래서 발명자로 잘못 알려졌다고 설명합니다. S6
유화는 그 뒤 남쪽으로 퍼졌습니다. 1445년 무렵 나폴리의 화가가 유화 기법을 썼고, 1448년 스페인 발렌시아의 기록에는 반 에이크의 유화가 아직 신기한 것으로 나옵니다. 1460년대 베네치아의 벨리니도 이미 유화를 썼습니다. 그래서 1475년 무렵 시칠리아 화가 안토넬로가 베네치아에 유화를 처음 가져왔다는 옛 이야기는 반박되었습니다. S6
물감 재료도 바뀌었습니다. 색가루는 값이 큰 재료였고, 첸니니는 좋은 울트라마린 청색(보석 청금석을 간 파랑) 1온스(약 28g)에 금화 8두카트라고 적었습니다. S3 19세기 초에는 새 파랑, 코발트 블루가 1803~04년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S13
숫자 하나
8두카트 — 14세기 말 좋은 울트라마린 청색 1온스의 값 S3
천을 씌운 그림판인 캔버스는 다시 쓰이기도 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로버트 레만 컬렉션 도록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기요맹의 풍경화 아래에서 X선으로 여성의 초상이 발견되었다고 적습니다. S14
2-4선택의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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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보석·벨벳·금속처럼 질감이 다른 것을 한 화면에 그리려고 유화를 골랐습니다.
화가들은 왜 유화를 골랐을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유화가 두꺼운 칠과 정밀한 세부를 모두 할 수 있고, 천천히 마르기에 부드럽고 이음새 없는 그림자를 만들 수 있어 대리석과 보석, 벨벳과 금속의 빛을 그릴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S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같은 글은 한스 멤링을 예로 듭니다. 기름에 개면 대부분의 안료가 투명해져, 얇은 층을 겹쳐 붉은색과 초록에 아래 색이 비치는 짙은 빛을 줍니다. 멤링은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입니다. S6


대표 색
- 성모의 붉은 겉옷
#A83A2C - 오른쪽 성녀의 올리브 초록 옷
#62662B - 초록 옷의 밝은 주름
#7C8A2E - 성모 뒤 금빛 휘장
#C9A15A
「성 카타리나와 성 바르바라와 성모자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Catherine of Alexandria and Barbara - 한스 멤링, 1480년대 초)」: 가운데 성모의 붉은 겉옷과 오른쪽 성녀의 올리브 초록 옷이 아래 색이 비치는 짙은 색으로 보입니다.
한스 멤링, 「성 카타리나와 성 바르바라와 성모자」, 1480년대 초, 나무에 유채, 67×72.1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34, 공개 도메인
어두운 색에도 글레이즈를 썼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캉팽 공방의 세 폭 제단화가 갈색 흙 안료까지 넓게 글레이즈해 어두운 반그늘과 실내로 스미는 빛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S6

「수태고지 세 폭 제단화 (Annunciation Triptych, Merode Altarpiece - 캉팽 공방, 1427~32년경)」: 가운데 칸의 방 안에서 천사와 성모가 마주 앉았고, 오른쪽 칸에는 목수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캉팽 공방, 「수태고지 세 폭 제단화」, 1427~32년경, 참나무에 유채, 펼친 크기 64.5×117.8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6.70a-c, 공개 도메인
얇은 층과 두꺼운 붓질은 한 그림 안에서도 함께 쓰였습니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추수하는 사람들 (The Harvesters - 피터르 브뤼헐, 1565)」은 아래 밑그림이 비칠 만큼 얇고 투명한 층 위에 두꺼운 붓질을 바로 얹었습니다. S6

「추수하는 사람들 (The Harvesters - 피터르 브뤼헐, 1565)」: 누런 밀밭을 베는 사람들과 나무 아래에서 쉬며 먹는 사람들이 있고, 멀리 푸른 바다가 보입니다.
피터르 브뤼헐, 「추수하는 사람들」, 1565, 참나무에 유채, 116.5×159.5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164, 공개 도메인
2-5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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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밖에서도 기름을 쓴 그림이 보고된 적이 있고, 유럽에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퍼졌습니다. 한국에는 20세기 초에 왔습니다.
유화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유럽 밖에서도 기름을 쓴 그림이 보고되었습니다. 7세기 중반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석굴의 벽화 50곳 가운데 12곳에서 공기와 만나 굳는 기름. 아마씨유가 대표적입니다가 나왔다는 연구가 보도되었습니다. S15 다만 연구자들은 이를 "아마도"라는 단서와 함께 썼습니다. S15
유럽에서는 12세기 북유럽의 기록이 있고 S6, 14세기 말 이탈리아의 첸니니는 유화를 "독일인들"의 기법으로 불렀습니다. S3 15세기 플랑드르에서 나무판에 그린 그림으로 크게 발전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퍼졌습니다(2-3). S6
한국에는 유럽보다 수백 년 늦게 왔습니다. 한국미술 용어사전은 1833년 서양인이 베이징에서 그린 초상이 전하고, 1910년대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고희동 등이 한국에서 처음 유화를 그린 화가들이었다고 적습니다. S10
2-6알아보는 법 — 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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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자국 없이 번지는 그림자, 솟은 칠, 그리고 시간이 남긴 잔금을 봅니다.
캡션 없이 유화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 그림자의 경계: 유화는 천천히 마르므로 경계선 없이 번지는 그림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색가루를 달걀노른자에 갠 물감. 빨리 마릅니다는 빨리 말라, 그림자와 밝은 곳 사이를 짧은 빗금으로 나눠 칠해 경계가 또렷합니다. S6·S4
- 솟은 칠: 두꺼운 임파스토는 붓과 나이프 자국이 남고, 빛을 받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S9
- 시간의 흔적: 기름은 시간이 지나며 누레지고 S1, 굳으면서 줄어드는 힘이 쌓여 잔금(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S11
맞혀 보기
다음 두 그림 가운데 템페라는 어느 쪽일까요?
두초의 그림은 템페라와 금박입니다. 윤곽이 또렷하고 빛과 그림자가 빗금으로 나뉩니다.


왼쪽 페르메이르의 유화는 벽의 빛이 경계선 없이 번지고, 오른쪽 두초의 템페라는 윤곽과 금박이 또렷합니다.
Met 89.15.21 · 2004.442, 공개 도메인 S12
잔금은 가까이 보면 뚜렷합니다. 아래는 15세기 피렌체 화가 필리피노 리피의 「성모자」 일부를 흑백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다만 이 그림은 템페라와 유화를 함께 쓴 그림이라, 유화만의 균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S12



성모의 얼굴을 흑백으로 가까이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과 머리 수건 위로 거미줄 같은 잔금이 퍼져 있습니다.
필리피노 리피, 「성모자 (Madonna and Child - 필리피노 리피, 1483~84년경)」, 나무에 템페라·유채·금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49.7.10, 공개 도메인 · 근접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증, 위키미디어 공용,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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