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이 시기에 무엇을 더 볼 수 있나
이 절에서 볼 것
고대를 보러 간 여행, 그림으로 정리한 지식, 바다 건너온 자기, 여러 색 판화, 우리 산천의 그림 — 다섯 갈래로 봅니다.
고대를 보러 간 여행
18세기 유럽의 부유한 젊은이들은 왜 이탈리아로 떠났을까요? 16세기 말부터 영국 등의 젊은 귀족이 교육의 마무리로 파리·베네치아·로마를 돌던 긴 여행는 힘들고 비싸 특권층만 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에는 박물관이 거의 없어 여행자는 개인 소장품을 보고, 79년 화산재에 묻힌 고대 로마 도시들의 발굴지를 찾고, 골동품을 사서 집을 꾸몄습니다. S1 여행자는 초상화, 폐허 판화, 도시 풍경화를 기념품으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S1 아래 세 사람의 그림이 그 예입니다.

「젊은 남자의 초상 (Portrait of a Young Man - 폼페오 바토니, 1760~65년 무렵)」: 붉은 코트의 젊은 남자가 금박 탁자 곁에 서서 한 손을 펼칩니다. 레코드는 미네르바상, 천체 고리 기구, 로마 안내서와 오디세이 같은 책, 고대 부조를 소품으로 꼽고, 로마의 화가 바토니에게 초상을 맡기는 일이 그곳 여행자에게 거의 통과의례였다고 적습니다. 인물의 신원은 모릅니다. S29
폼페오 바토니, 「젊은 남자의 초상」, 1760~65년 무렵, 캔버스에 유채, 246.7×175.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03.37.1, 공개 도메인

눌러 보기 · 지점 5곳
- 1여신 조각상 미네르바상
- 2탁자 위 책 로마 안내서·화가 전기·오디세이
- 3천체 고리 기구 아밀러리 구
- 4고대 부조 흉상 부조
- 5작은 개 발치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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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 여행자가 화산재에 묻힌 고대 도시를 보러 간 나라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이탈리아 남부의 고대 로마 도시입니다.


왼쪽 「산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 카날레토, 1720년대 후반)」은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카날레토가 그린 광장으로, 종탑과 아케이드 아래 작은 인물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카날레토가 영국인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였고, 종탑의 창을 실제보다 적게, 깃대를 너무 높게 그렸다고 적습니다. S33 오른쪽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 콜로세오 (Veduta dell'Anfiteatro Flavio detto il Colosseo -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1776)」는 로마의 판화가 피라네시가 공중에서 내려다본 듯 경기장으로 종이를 가득 채운 에칭이고, 아래 라벨은 로마 관중의 신분별 좌석을 적은 고고학 연구입니다. S30
카날레토, 「산마르코 광장」, 172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68.6×112.4 cm — Met 1988.162 · 피라네시, 콜로세오 판화, 1776, 에칭, 76.2×101.6 cm — Met 59.570.426,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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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경기장 바닥 가운데 작은 인물들로 크기를 보여 줌
- 2왼쪽 아래 라벨 번호와 설명문
- 3오른쪽 아래 라벨 신분별 관중석 위치


땅에서 나온 고대와 신전풍 건물
고대는 땅속에서도 나왔습니다. 1738년 나폴리 왕의 후원으로 헤르쿨라네움의 정식 발굴이 시작되었고, 이 발굴과 폼페이 발굴이 18세기 중반 근대 고고학을 낳았습니다. S17
건축가들도 고대로 돌아갔습니다. 프랑스의 아베 로지에는 1755년 『건축 시론』에서 형태의 순수함을 주장했고, 그리스 신전의 기둥과 삼각 지붕(박공)은 저택·교회·은행·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파리의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지금의 팡테옹)이 프랑스 초기의 예입니다. S4 같은 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이성의 힘을 내세워 낡은 제도를 따져 묻던 18세기의 지적 운동와 함께 고대에 대한 존경과 고대 그리스·로마의 형식을 되살린 18세기 후반의 양식가 생겼습니다. S2 서론의 흰 기둥 건물이 이 흐름에서 나왔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The Death of Socrates - 자크루이 다비드, 1787)」: 사형 판결을 받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감옥 침상에 앉아 한 손은 독잔으로, 한 손은 위로 뻗고, 둘레의 제자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인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배경은 단순한 돌벽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을 다비드의 가장 완벽한 신고전주의 표현이라 부릅니다. S34
자크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캔버스에 유채, 129.5×196.2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31.45, 공개 도메인



그림으로 정리한 지식

18세기 사람들은 역사도 칸으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1750년 프랑스에서 펴낸 이 역사 세계지도는 지도라기보다 나라와 왕조의 흐름을 칸으로 나눈 연대표에 가깝습니다.
장루이 바르보 드 라 브뤼예르, 역사 세계지도, 1750 — 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S38
프랑스의 문필가 디드로와 수학자 달랑베르가 엮은 『백과전서』는 1751년부터 나온 28권짜리 사전으로, 직업과 기술을 그린 삽화가 많았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사전이 계몽주의의 합리주의를 내세워 프랑스 혁명의 지적 준비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S5

『백과전서』 삽화 한 장의 위쪽입니다. 책장과 작업대가 있는 작업장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삽화를 검 만드는 직업 항목으로 분류합니다. S36
J. R. Lucotte, 『백과전서』 삽화, 1765, 에칭·엔그레이빙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33.23.4(144), 공개 도메인

생물도 정리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1735년 『자연의 체계』를 펴내, 생물을 속과 종 두 낱말로 부르는 방법을 세웠습니다. S13
먼 바다도 그림으로 왔습니다. 1660년 세워진 영국 과학자들의 모임와 해군은 1768년 제임스 쿡을 지휘관으로 첫 태평양 과학 탐사를 보냈습니다. 쿡은 석탄선을 고친 368톤짜리 배 인데버호를 타고 가서 뉴질랜드 해안선을 6개월 동안 측량했고, 1770년 4월 호주 남동 해안에 닿았습니다. S14

쿡의 뉴질랜드 해도입니다. 가는 선으로 그린 두 섬의 해안선 위로 나침반 방위선이 여러 갈래로 뻗습니다.
제임스 쿡, 뉴질랜드 해도, 1770 — 위키미디어 공용(19세기 간행본에서 옮김), 공개 도메인 S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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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북섬 쿡이 측량한 위쪽 섬
- 2남섬 세로로 긴 아래쪽 섬
- 3방사선 나침반 방위선 묶음
- 4설명 글 오른쪽 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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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이 측량에 6개월을 들인 곳은?
뉴질랜드 해안선을 6개월 동안 측량한 뒤 1770년 4월 호주 남동 해안에 닿았습니다.
함께 간 화가 시드니 파킨슨은 식물 그림 약 955점을 남겼고, 판각사 18명이 13년 동안 동판 743점을 만들었다고 한 2차 자료는 적습니다. S35
숫자 하나
743점 — 쿡의 첫 항해 식물 그림으로 만든 동판 수(2차 자료) S35
과학은 구경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화가 조지프 라이트 오브 더비의 「공기펌프 속의 새 실험」을,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밤에 촛불 하나가 해골이 든 유리구 뒤에서 타는 장면이라 설명합니다. 흰 앵무새를 유리 용기에 넣고 공기를 빼는 실험 앞에서 구경꾼의 반응이 저마다 다릅니다. S28

「공기펌프 속의 새 실험 (An Experiment on a Bird in the Air Pump - 조지프 라이트 오브 더비, 1768)」: 어두운 방 가운데 촛불 하나가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아래에서 밝힙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 그림을 1760년대 촛불 그림 가운데 가장 크고 극적이라 하고, 해골 따위로 삶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그림 주제로 볼 수도 있다고 적습니다. S28
조지프 라이트 오브 더비, 「공기펌프 속의 새 실험」, 1768, 캔버스에 유채, 183×244 cm — 런던 내셔널 갤러리 NG725, 위키미디어 공용 사진,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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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촛불과 유리구 해골이 든 유리구 뒤의 촛불 하나
- 2유리 용기의 새 공기를 빼는 용기 속 흰 앵무새
- 3얼굴을 가린 소녀 실험을 보지 못하는 아이
- 4서로를 보는 연인 실험보다 서로를 보는 두 사람


대표 색
- 배경의 어둠
#0E0C0B - 촛불 받은 얼굴
#A06F4D - 붉은 옷
#7D371A
과학은 기구로도 구경거리였습니다. 행성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들을 작은 모형으로 움직여 보여 주는 기구를 시계에 단 것도 있습니다.

런던 시계 박물관의 오러리 시계입니다. 파일 설명은 18세기 말 작품이라 적습니다. 두 인물상이 행성 모형이 든 유리구를 받칩니다.
Daderot, 오러리 시계 사진, 클락메이커스 박물관(런던) — 위키미디어 공용, CC0 S38

자기와 차를 찾은 유럽
유럽은 왜 자기를 직접 만들려 했을까요? 17세기 유럽은 중국·일본 자기를 귀하게 여겨 수입을 늘렸지만 단단한 자기의 재료를 몰랐습니다. 1709년 연금술사 뵈트거가 재료를 찾아냈고, 이듬해 독일 동부 작센 지방의 마이센에 공장이 섰습니다. 마이센은 중국 자기를 따라잡아, 1720년대에는 상상 속 동아시아 생활을 그린 장식이 인기였습니다. S3 같은 때 차도 들어왔습니다. 차는 161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처음 유럽에 보냈습니다. S18

「뚜껑 달린 설탕 상자 (Sugar box with cover - 마이센 제작소, 1723~26)」: 차·커피 세트의 하나인 낮은 팔각 상자입니다. 금색 칸 안에 보라 옷을 입은 중국풍 인물과 야자수가, 양옆 흰 면에는 꽃과 곤충이 그려져 있습니다. 레코드는 금 바탕을 에나멜을 구운 뒤 더했다고 설명합니다. S32
마이센 제작소, 「뚜껑 달린 설탕 상자」, 1723~26, 경질 자기, 높이 7.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74.356.426a, b,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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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처음 단단한 자기를 만든 공장이 선 곳은?
1709년 뵈트거가 재료를 찾고, 1710년 마이센에 공장이 섰습니다.
자기와 차를 사려면 은이 필요했고, 나중에는 아편이 쓰였습니다. 1757년 청은 광저우를 외국과 무역하는 유일한 항구로 정했습니다. 외국 상인은 성벽 밖 강가의 13개 상관(창고)에 머물렀고, 청은 공행이라는 상인 조합에 무역 독점을 주었습니다. 영국은 인도산 아편으로 차와 비단 값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S9
한편 대서양에서는 유럽의 무기·직물·술이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설탕과 커피가 유럽으로 오가는 삼각무역이 돌았습니다. S16
숫자 하나
5분의 3 — 16~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 가운데 18세기에 이뤄진 비중(역사가 추정) S16
여러 색으로 찍은 판화
일본의 에도 시대는 비교적 평화로웠고, 상인과 장인, 곧 도시민이 유곽·극장·찻집을 후원했습니다. S7 1765년, 색마다 판목을 따로 새겨 한 장에 겹쳐 찍는 기술로 여러 색을 찍은 판화(니시키에)가 가능해졌습니다. 첫 다색판은 새해에 주고받던 것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달력이라 하고 S6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하이쿠를 곁들인 판화라 하며, 화가 스즈키 하루노부가 1765년 여러 판목을 쓴 다색판을 도입했다고 적습니다. S10 판화 한 장은 디자이너·조각사·인쇄사·출판사 네 전문가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S6

「폭풍 속의 두 여인 (Two Women in a Storm - 스즈키 하루노부, 1764~72)」: 노란 우산 하나 아래 두 여인이 비스듬한 빗줄기 속을 걷고, 바닥은 희게 덮였습니다. 레코드는 목욕탕에 가는 두 젊은 여성이 목욕 가운과 수건을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S31
스즈키 하루노부, 「폭풍 속의 두 여인」, 1764~72, 다색 목판화, 26.4×20.6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2440, 공개 도메인

순서 맞추기 · 차례로 누르기
다색 판화 한 장에 네 전문가가 거치는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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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일본에서 가능해진 것은?
색마다 판목을 따로 새겨 겹쳐 찍는 니시키에입니다.
우리 산천을 그리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무엇을 그렸을까요? 우리나라 산천을 그린 조선 후기에 실제 우리 산천을 그린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문인 사대부의 명승 유람 풍조와 조선의 자주의식을 배경으로 꼽습니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그 틀을 세웠고, 백과사전은 정선의 방식이 실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다시 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S20

「인왕제색도 (Inwangjesaekdo - 정선, 1751)」: 정선이 일흔여섯 살이던 1751년 윤5월 하순, 비 갠 뒤의 서울 인왕산을 효자동 쪽에서 그렸습니다. 원경의 바위는 짙게, 안개와 능선은 엷게 칠했고, 가까운 곳은 내려다보고 먼 곳은 올려다보는 시선을 함께 썼습니다. S26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종이에 수묵, 79.2×138.2 cm — 백과사전은 국립중앙박물관, 공용 파일 설명은 호암미술관으로 적어 소장처가 자료마다 다름.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S37

- 가까운 곳 — 내려다본 시선
- 먼 곳 — 올려다본 시선


「금강전도 (Geumgangjeondo - 정선, 1734)」: 뾰족한 봉우리 수백 개가 둥근 산 덩어리 안에 빽빽이 모였습니다. 금강산 그림은 원래 중국에 보내는 선물용이었는데, 조선 후기 여행 붐으로 금강산이 많은 사람의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정선은 그림 그리는 법과 본보기를 모아 낸 책를 참조해 경물을 다시 짰습니다. S27
정선, 「금강전도」, 1734 — 재료·소장처는 확인하지 못함.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S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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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금강전도」는 금강산을 본 그대로 옮긴 그림일까요?
백과사전은 정선이 화보를 참조해 경물을 재구성했다고 설명합니다.
정조의 화성
같은 시기 조선 조정도 새 도시를 세웠습니다. 1776년 즉위한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고 고을을 팔달산 아래로 옮긴 뒤, 1793년 준비를 거쳐 1794년 1월부터 2년 반 만에 화성을 쌓았습니다. 성벽은 약 5.4km입니다. S24 무거운 돌은 도르래를 쓴 도르래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기구로 들었고, 학자 정약용의 책에 그림과 함께 실렸습니다. S25

오늘의 수원 화성입니다. 언덕을 따라 돌과 벽돌로 쌓은 성벽이 굽이지고, 위에 누각이 섰습니다.
Bernard Gagnon, 수원 화성 사진, 2022 — 위키미디어 공용, CC0 S38
순서 맞추기 · 차례로 누르기
수원 화성이 서기까지의 순서입니다.

숫자 하나
5.4km — 수원 화성 성벽 길이 S24
연표 · 끌어 보기
- 1709뵈트거가 단단한 자기 재료를 알아냄 S3
- 1710마이센 자기 공장 설립 S3
- 1734정선 「금강전도」 S27
- 1735린네 『자연의 체계』 S13
- 1735건륭제 즉위 S19
- 1738헤르쿨라네움 정식 발굴 시작 S17
- 1750균역법 시행 S21
- 1751『백과전서』 간행 시작 S5
- 1751정선 「인왕제색도」 S26
- 1757청이 광저우를 유일한 개항장으로 S9
- 1765와트의 분리 응축기 구상 S12
- 1765다색 목판화 가능 S6
- 1768쿡의 인데버호 출항 S14
- 1768라이트의 공기펌프 그림 S28
- 1776와트 엔진 설치 S12
- 1776피라네시 콜로세오 S30
- 1780박지원 연행(『열하일기』) S22
- 1787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S34
- 1789프랑스 구체제 붕괴 S15
- 1796수원 화성 완성 S24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2-2이 시대의 동력
이 절에서 볼 것
교역과 계몽, 기계와 탐사가 18세기를 움직였습니다.
이 백 년을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 과학기술: 린네의 분류 S13, 와트가 1765년 구상한 증기를 따로 식히는 칸을 두어 증기기관의 열 낭비를 줄인 장치와 1776년 설치한 엔진 S12, 쿡의 탐사 S14, 거중기 S25. 농업·수공업 경제가 기계 제조 경제로 바뀐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해 1760~1830년에는 대부분 영국에 한정되었습니다. S11
- 전쟁·정치 격변: 프랑스는 1787~99년 혁명을 겪었고, 1789년 왕과 귀족 중심의 낡은 체제(구체제)가 무너졌습니다. S15 청 건륭제는 1755~60년 북서 원정으로 신장을 편입했습니다. S19
- 질병·인구: 1730년 무렵부터 성인 사망률이 줄어 유럽 인구가 1715~1800년 사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S15
- 경제·계급: 대서양 삼각무역 S16, 광저우 단일 무역 S9, 에도 도시민 S7, 조선에서는 1750년 영조가 양인의 군역 부담을 1필로 고르게 줄인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S21
- 사상·종교: 계몽주의와 『백과전서』의 합리주의 S2·S5. 조선에서는 1780년 박지원이 청에 다녀와 청의 발전한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썼습니다. S22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37세 이하 젊은 문신을 뽑아 가르쳤습니다. S23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18세기 초중반 유럽 미술 하면 18세기 초중반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프랑스·영국·미국으로 번진, 조개·소용돌이·아칸서스 장식 양식가 먼저 거론됩니다. 로코코는 대칭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곡선 장식이었고, 판화집·수입품·이주 장인을 따라 퍼졌습니다. S8
2-3오늘날의 시각문화에 준 영향
이 절에서 볼 것
신전풍 건물의 얼굴이 남았고, 그 시대의 성과 그림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8세기에 되살린 신전의 기둥과 삼각 지붕이 저택·교회·은행·박물관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서론의 건물이 그 예입니다. S4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고 S24, 「인왕제색도」는 1984년 국보가 되었으며 S26, 헤르쿨라네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S17 근거 대기 오늘의 학명이 린네의 두 낱말 이름 체계를 잇는다는 원문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처음의 흰 기둥 건물로 돌아갑니다.
신전의 기둥과 삼각 지붕은 18세기에 저택·은행·박물관으로 되살아났고, 같은 세기 사람들은 고대 유적을 직접 보러 가고 땅속에서 꺼냈습니다. S4·S1·S17 같은 백 년 동안 사람들은 지식과 먼 바다를 그림으로 정리했고, 에도에서는 여러 색 판화를, 조선에서는 우리 산천의 그림을 즐겼습니다.
S5·S14·S6·S20 한편 그 교역에는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S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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