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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변의 판 경계마마의 단풍
A 지역 · 아시아 · 동아시아

일본

일본의 미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차를 대접하는 예법인 다도, 목판화 우키요에, 그리고 벚꽃 같은 계절을 떠올립니다. 서양의 '전통 일본' 목록에는 다도와 우키요에가 들고, 일본 관광청은 일본을 계절의 나라로 소개합니다. 문을 닫고 혼자 문화를 다듬은 섬나라라는 인상도 있습니다. 이 미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01 · 핵심

1-1정의

일본의 미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차를 대접하는 예법인 다도, 목판화 우키요에, 그리고 벚꽃 같은 계절을 떠올립니다. 서양의 '전통 일본' 목록에는 다도와 우키요에가 들고, 일본 관광청은 일본을 계절의 나라로 소개합니다. S3·S8 문을 닫고 혼자 문화를 다듬은 섬나라라는 인상도 있습니다. S4 이 미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일본은 아시아 대륙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놓인 섬나라로, 바다 건너 한반도와 마주합니다. S8

1-2무엇을 볼 수 있나

이 땅은 네 지각판이 만나는 곳이라 지진이 잦고, 남북으로 길어 벚꽃이 석 달에 걸쳐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S8 8세기 시집 『만요슈』부터 계절을 노래한 글이 이어졌고, 미술에도 계절이 자주 나옵니다. S1 그 그림에는 계절을 알리는 색과 곧 지나갈 것을 아끼는 덧없음이 있습니다. S16·S2

섬나라이지만 바다 건너 사람과 기술이 꾸준히 왔습니다. S3·S4 18세기부터 판화가는 유럽의 원근법으로 깊은 공간을 그렸습니다. S13

1-3대표 사례

일본 주변의 판 경계마마의 단풍이집트 피라미드

지도는 땅, 「마마의 단풍 (Maples at Mama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7년경)」은 계절, 「이집트 피라미드 (The Pyramids of Egypt - 우타가와 쿠니나가, 1829)」는 원근법을 보여 줍니다.

USGS · Met, 공개 도메인

2-1이 지역에서 무엇을 더 볼 수 있나

이 절에서 볼 것

흔들리는 땅과 뚜렷한 계절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지진이 잦은 땅에서 사람들은 재해를 어떻게 그렸을까요?

먼저 땅부터 보겠습니다. 일본 동북 앞바다에는 깊이 9천 미터가 넘는 바다 밑의 깊고 긴 골짜기가 있습니다. S24 여기서 태평양 바닥의 지구 겉을 이루는 거대한 암석 판이 일본 쪽 판 아래로 파고듭니다. S7 그래서 이 경계에서는 1973년 이후에만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아홉 번 났고, 1611년·1896년·1933년에는 동북 해안을 큰 쓰나미가 덮쳤습니다. S7 869년 동북 지방 센다이 평야를 덮친 쓰나미는 옛 기록과 땅속 모래층으로 함께 확인됩니다. S7

숫자 하나

8cm쯤 — 태평양 바닥의 판이 해마다 일본 쪽 판 아래로 파고드는 거리 S7

이런 땅에서 큰 지진은 그림의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855년 에도(오늘의 도쿄)에 큰 지진이 나자, 땅속 큰 메기가 지진을 일으킨다는 옛이야기를 그린 판화 '메기 그림. '나마즈'는 일본말로 메기'가 수백 종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판화를 사서 부적처럼 집에 붙였고, 당시의 무사 정부인 막부가 그해 12월에 금지하고서야 판매가 멈췄습니다. S12 그림 속 메기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맞기도 하고, 부자가 쌓아 둔 재물을 흩어 세상을 고르게 하는 쪽으로도 그려집니다. S12 아래 그림에서도 칼을 든 신이 메기를 누르고, 구름 위 복의 신이 돈을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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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복의 신 구름 위에서 돈을 뿌립니다(다이코쿠로 보입니다)
  2. 2칼을 든 신 메기 위에 올라타 누릅니다
  3. 3메기 땅속에서 지진을 일으킨다는 큰 메기
  4. 4사람들 떨어지는 돈을 줍습니다

위에서는 구름 위의 복의 신이 돈을 뿌리고, 가운데서는 칼을 든 신이 메기에 올라타 누르며,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떨어지는 돈을 줍습니다.

「지진 막이 노래 (Earthquake-Prevention Song - 작자 미상, 1855)」, 목판 — 와세다대 도서관, 위키미디어 공용 Namazu4, 공개 도메인

땅의 흔들림만큼 눈에 띄는 것이 계절입니다. 벚꽃은 3월부터 5월까지 남쪽에서 북쪽으로 피어 올라가고, 여름은 덥고 습하며 8~9월에는 태풍이 지나가고, 겨울에는 북쪽에 눈이 쌓입니다. S8 일본 관광청은 일본을 계절을 눈으로 볼 뿐 아니라 깊이 느끼는 나라로 소개합니다. S8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펴내는 온라인 철학 사전인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오늘의 벚꽃놀이를 '사물이 곧 지나간다는 데서 오는 애틋함'의 흔한 예로 듭니다. 벚꽃이 아름다운 까닭을 곧 진다는 데서 찾는 것입니다. S2

이 계절감은 판화에서도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에도 시대(1603~1868) 도시 사람들이 즐긴 목판화 우키요에의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아래 두 장에서 계절을 알리는 나무와 하늘과 눈을 크게 그렸습니다. 1-3의 「마마의 단풍」에서는 붉은 단풍 가지가 화면 앞을 가로지르고, 그 사이로 연못과 먼 산, 날아가는 기러기가 보입니다. 하늘은 위쪽 남색에서 아래쪽 분홍으로 번집니다. S16

간바라의 밤눈

「간바라의 밤눈 (Evening Snow at Kanbara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33~34년경)」은 눈이 쌓인 지붕과 회청색 하늘로 겨울밤을 그립니다. S16

우타가와 히로시게, 「간바라의 밤눈」, 1833~34년경, 목판, 22.5×34.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2492, 공개 도메인

2-1-1 인접한 나라와의 관계

이 절에서 볼 것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가장 가까운 한반도를 거쳐 사람과 기술이 꾸준히 들어왔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섬에는 무엇이, 어느 길로 들어왔을까요?

가장 가까운 길은 한반도였습니다. 부산에서 규슈(일본 서남쪽의 큰 섬)까지는 약 240킬로미터이고, 쓰시마섬이 그 중간에 있습니다. S3 기원전 1천년기에 한반도 남부 사람들이 이 길로 건너와 벼농사와 돼지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온 때는 동아시아사 연구자 사라 슈나이윈드의 개설서 안에서도 기원전 900년 무렵부터 기원전 300년 무렵까지 장마다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S3

반도의 철 역시 이 길로 들어왔습니다. 반도 남쪽 끝의 작은 나라들인 가야가 철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보냈고, 일본의 배는 가야에 닿은 뒤 반도 서해안을 따라 백제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백제의 한 항구 유적에서는 규슈의 제사 도구가 나왔습니다. S3 슈나이윈드는 이 교류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했다기보다 모두가 교환에서 부와 위신을 얻었다고 정리합니다. 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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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부산 쪽 바닷가 한반도 남동쪽 끝. 규슈까지 약 240킬로미터
  2. 2규슈 일본 서남쪽의 큰 섬
  3. 3반도 서해안 일본의 배가 가야를 거쳐 백제까지 따라간 바닷길
  4. 4해구 태평양 바닥의 판이 파고드는 깊은 골짜기(2-1)

왼쪽에 한반도가, 그 오른쪽 아래로 규슈와 일본 열도가 이어집니다. 열도 동쪽 바다 밑은 짙은 남색으로 깊어집니다.

"Japan Relief Map of Land and Seabed", 2009, 전 지구 지형 모델(ETOPO1) 기반 지도 — 미국 항공우주국(NASA)·해양대기청(NOAA) 자료,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물건 다음에는 제도와 글이 건너왔습니다. 6~7세기 나라 지방에서 힘을 키운 일본의 초기 정권은 불교와 유교,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을 신라와 특히 백제에서 들여왔습니다. S3 663년 백제와 손잡고 백촌강에서 당·신라 연합군과 싸워 크게 진 뒤에는, 반도에서 건너온 글 아는 사람들이 일본 조정의 행정을 맡았습니다. S3

이렇게 바깥에서 배우던 흐름은 9세기 말에 한 번 느슨해집니다. 894년 무렵 당나라에 보내던 사절이 끊기자, 수도 교토에 모여 살던 귀족 약 5천 명은 일기와 이야기를 자기들의 글로 써 나갔습니다. 궁정 생활을 그린 긴 이야기 『겐지 이야기』가 그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S3

연표

  1. 기원전 1천년기한반도 남부에서 벼농사와 돼지가 건너옴 S3
  2. 6~7세기불교·유교·다스리는 기술이 백제·신라에서 들어옴 S3
  3. 663백촌강 패배 뒤 반도 출신 지식인이 조정 행정을 맡음 S3
  4. 894 무렵당나라 사절이 끊김 S3
  5. 1592·1597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 S9
  6. 1607~1811조선 사절 열두 번 S4

16세기 말에는 전쟁이 사람과 기술을 옮겼습니다. 1592년과 1597년, 일본을 통일한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S9 이때 끌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이 1616년 규슈 아리타에서 자기를 빚을 흙을 찾았다고 전합니다. S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 미술 도록도 일본 자기가 1600년 무렵 한국과 중국에서 건너온 도공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적습니다. S22

조선 사람이 일본을 보고 남긴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일본의 무사 정부에 외교 사절단을 열두 번 보냈고, 1636년 일본에 간 통신사 황호는 방 안의 금병풍을 보고 감탄한 글을 남겼습니다. S4·S1

2-2이 지역에서 무엇을 쉽게 발견할 수 있나

이 절에서 볼 것

종이와 판화, 수수한 옷 색, 그리고 철마다 바뀌는 풍경입니다.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에서는 판화와 책이 흔했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많아 출판이 번성했고, 에도에만 책을 사거나 빌릴 수 있는 가게가 수백 곳 있었습니다. S9 판화는 대개 벚나무 판에 새겨, 뽕나무과 나무의 속껍질로 만든 종이에 즐겨 찍었습니다. S17 일본의 손종이 닥나무 섬유를 맑은 강물에 풀어 대발로 떠서 만드는 종이는 편지와 책뿐 아니라 병풍과, 나무틀에 종이를 바른 미닫이(쇼지)에도 쓰였습니다. S25

종이를 바른 미닫이 창(쇼지)과 눈 내린 정원

격자 나무틀에 종이를 바른 쇼지로, 아래쪽에는 유리를 끼웠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위쪽 종이는 연한 회청색으로 보이고, 아래 유리 너머로 눈 덮인 정원이 밝게 보입니다.

사진: Tamaki Sono, "Yukimi shōji 02", 2012 —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2.0

옷의 색에서도 시대의 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상공인인 에도 시대 도시에 사는 상인과 장인이 부유해지자, 막부는 신분 질서를 지킨다며 사치를 막는 법(검약령)을 거듭 내렸습니다. 그러자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없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줄무늬와 회색·갈색·남색 같은 수수한 색이 유행했습니다. S1

계절은 오늘도 쉽게 눈에 띕니다. 봄에는 도쿄 메구로강 위를 벚꽃 가지가 겹겹이 덮고, 가을에는 교토 다카오의 붉은 단풍 너머로 휘어진 기와지붕이 보이며, 겨울에는 기후현 시라카와의 마을길과 지붕에 눈이 쌓입니다. S23

메구로강 벚꽃다카오 진고지의 단풍눈 오는 시라카와

왼쪽부터 봄의 흰 벚꽃, 가을의 붉은 단풍과 기와지붕, 겨울의 눈 쌓인 마을길입니다.

사진: Wadakuramon, "Meguro River cherry blossom 2025 April", 2025 — 위키미디어 공용, CC0 · lumoplank, "Takao, Kyoto, Part II", 2025 — 위키미디어 공용, CC0 · 雷太, "Shirakawa in winter", 2018 —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2.0

2-3시대별 문화 발전

이 절에서 볼 것

같은 땅이라도 권력과 교역이 바뀔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땅에서 보이는 것은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계절을 아끼는 마음은 글에서 먼저 시작해 무늬로 옮겨 갔습니다. 가을풀을 보며 애틋함을 노래하는 마음은 나라 시대(710~794)의 『만요슈』에서 시작해 헤이안 시대(794~1185) 궁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16세기 무렵)부터는 가을풀 무늬가 옷에 들어갔고, 모모야마 시대에는 가면을 쓰고 노래와 춤으로 하는 무대극인 노의 의상에도 억새 같은 가을풀 무늬가 들어갔습니다. S1

다도의 소박함도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닙니다. 기존 다도사 연구에 따르면,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무사 정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은 중국 송나라 그림과 그릇으로 꾸민 방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16세기에 들어 부유한 상인과 무장들 사이에서 한반도·일본·동남아에서 만든 담백한 그릇과 초가 다실로 취향이 옮겨 갔고, 한반도에서 만든 막사발인 한반도에서 만들어 일본 다도에서 쓴 찻사발이 다기로 주목받았습니다. S1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다도를 다듬은 차인 센노 리큐가 값비싼 중국 그릇 대신 지역에서 만든 소박한 도구를 골랐다고 설명합니다. S2 다만 일본과 한국 두 박물관의 도록은 이런 다도를 가리키는 '와비차'라는 이름이 근대 이후에 붙었다고 밝힙니다. S1

검은 라쿠 찻사발

「검은 라쿠 찻사발 (Black Raku Tea Bowl - 작자 미상, 17세기 초)」: 둥근 통 모양의 검은 사발로, 입구가 고르지 않고 표면에 광택이 거의 없습니다.

작자 미상, 「검은 라쿠 찻사발」, 17세기 초, 라쿠 유약 질그릇, 높이 9.2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7.118.74, 공개 도메인

그렇다고 소박함이 그 시대의 전부였던 것도 아닙니다. 16세기 말 모모야마 시대(1573~1603)의 무장들은 성 안을 금빛 큰 병풍으로 꾸몄고, 같은 시기 다도는 소박한 그릇과 간소한 다실을 택했습니다. 화려함과 소박함이 한 시대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S18·S1

에도 시대에 평화가 이어지며 도시가 커지자 우키요에가 널리 퍼졌습니다. S1 1765년 무렵에는 색마다 판을 따로 새겨 겹쳐 찍는 다색 판화가 나왔는데, 처음에는 에도의 부자들이 주고받던 달력이었습니다. 판화 한 장은 넷이 나눠 만들었습니다. S17

  1.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
  2. 판을 새기는 조각사
  3. 찍는 인쇄사
  4. 주제를 정하고 판을 내는 출판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색마다 판을 따로 새겨 겹쳐 찍은 다색 판화의 예입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Under the Wave off Kanagawa -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0~32년경)」는 파랑과 회색, 연한 살구색이 칸칸이 나뉘어 찍혔습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30~32년경, 목판, 25.7×37.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1847, 공개 도메인

그러면 에도 시대의 일본은 정말 바깥과 닫혀 있었을까요? 에도 막부는 1630년대 말까지 외국인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S18 하지만 일본 역사가 아라노 야스노리는 이 시기 일본이 네 곳의 창구로 바깥과 통했다고 설명합니다. 규슈의 나가사키에서는 중국·네덜란드 상인과 교역했고, 나머지 세 창구는 각각 조선, 남쪽 섬나라 류큐, 북쪽의 아이누와 이어졌습니다. S4

나가사키의 중국 배

「나가사키의 중국 배 (Chinese Ships at Nagasaki - 작자 미상, 1840년경)」: 푸른 바다 위에 돛에 가로 살이 든 큰 중국 배와 작은 배가 떠 있고, 오른쪽에 푸른 산이 보입니다.

작자 미상, 「나가사키의 중국 배」, 1840년경, 목판, 16.2×46.2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2.35, 공개 도메인

나가사키 앞바다의 인공섬 데지마에는 1641년부터 1859년까지 아시아 무역을 맡은 네덜란드 회사의 무역 사무소가 있었습니다. S5 다만 아라노는 네덜란드와의 교역량이 중국의 3분의 1쯤이었고, 네덜란드가 일본 문화에 눈에 띄는 영향을 준 것은 19세기 무렵부터라고 말합니다. S4

데지마 풍경오늘의 데지마

왼쪽은 1830년대에 그린 부채꼴 섬 데지마로, 담장 안에 지붕들이 빽빽합니다. 오른쪽은 복원한 데지마 건물 앞으로 노면 전차가 지나가는 2016년의 모습입니다.

카와하라 케이가 공방, 「데지마 풍경 (Gezicht op Deshima - 카와하라 케이가 공방, 1833~36)」, 비단에 채색, 60×85 cm — 레이크스뮤지엄 RP-T-1921-488, 위키미디어 공용 CC0 · 사진: Houjyou-Minori, "Dejima and trams of Nagasaki", 2016 — 위키미디어 공용, CC0

그래도 이 좁은 창구로 들어온 판화가 새 판화 갈래를 낳았습니다. 1730년대 판화가 오쿠무라 마사노부는 바다 건너 들어온 유럽 동판화를 보고, 멀리 갈수록 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원근법을 익혀 깊은 공간을 앞세운 판화 '떠 보이는 그림. 원근을 과장해 화면 안쪽이 깊어 보이게 한 판화'를 시작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갈래가 끝까지 조금 진기한 물건으로 남았다고 설명합니다. 1829년 쿠니나가의 「이집트 피라미드」도 '네덜란드 우키에'라는 연작의 한 장입니다. S13 이 호기심은 그림 그리는 법으로도 번졌습니다. 1799년 서양화 기법을 따라 한 화가 시바 고칸은 일부 서양 삽화가 아주 사실적인 것을 보고 서양 미술이 뛰어나다고 적었습니다. S6

가로줄을 쌓은 흰 탑과 그 앞의 붉은 옷 사람들. 길과 먼 탑이 안쪽으로 갈수록 작아집니다

1-3의 「이집트 피라미드」를 크게 보면, 쿠니나가는 가 본 적 없는 피라미드를 가로줄을 쌓은 흰 탑처럼 그렸고, 그 앞에 붉은 옷의 키 큰 네덜란드 사람들과 야자나무를 세웠습니다. 길과 먼 탑들은 안쪽으로 갈수록 작아집니다. S13

우타가와 쿠니나가, 「이집트 피라미드」, 1829, 니시키에, 25.1×38.1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24.625, 공개 도메인

판화가 들어온 창구로 물건은 나갔습니다. 1650년대 중국이 바다 무역을 엄격히 막고 나라 안이 어지러워 중국 자기를 제때 받기 어려워지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59년 일본에 자기 약 5만 6,700점을 주문했습니다. S5 일본 도공은 네덜란드의 요청에 따라 중국의 수출용 양식을 본떠, 흰 바탕에 푸른 무늬를 그리고 테두리를 칸으로 나눈 접시를 만들었습니다. S14

문이 활짝 열린 것은 19세기 중반입니다. 1853년 미국 해군 제독 페리의 함대가 와서 개항을 요구한 뒤 일본은 항구를 열었고, 1872년 도쿄와 요코하마 사이에 철도를 놓는 등 서양 기술을 들였습니다. S9 판화가 고바야시 키요치카는 1874년 도쿄로 돌아와 도쿄 명소 연작 93점을 그렸고, 그중 25점이 밤 풍경입니다. 이 무렵 도쿄에는 가스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그는 목판에 서양식 빛과 그림자, 원근을 들였습니다. S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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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가스등 이 무렵 도쿄에 켜지기 시작한 가스등
  2. 2전신주 전선이 화면 위를 가로지릅니다
  3. 3그림자 눈 위에 드리운 그림자. 서양식 빛과 그림자를 목판에 들인 예

「겨울 저녁 에도 변두리 풍경 (Street Scene in the Outskirts of Edo on an Evening in Winter - 고바야시 키요치카, 1878년경)」: 전신주와 가스등이 선 눈길을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왼쪽 아래 눈 위에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S15

고바야시 키요치카, 「겨울 저녁 에도 변두리 풍경」, 1878년경, 목판, 23.3×34.6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228, 공개 도메인(미술관 촬영용 색 막대는 잘라 냄)

그로부터 40년쯤 뒤에는 카메라와 렌즈도 이 땅에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니콘의 회사 연혁에 따르면 1917년 미쓰비시가 맡아 광학 회사 닛폰고가쿠(오늘의 니콘)를 세웠고, 유럽을 따라잡으려면 광학 기기를 국산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았습니다. 1921년에는 독일 기술자 여덟 명을 불러 렌즈를 설계했습니다. S10

캐논의 연혁에 따르면 1933년 도쿄의 작은 연구소(오늘의 캐논)는 독일 카메라 라이카를 분해해 일본의 35밀리 카메라를 만들려 했습니다. 그때 라이카 한 대는 매우 비쌌습니다.

숫자 하나

6배 — 1933년 라이카 한 대 값이 은행에 취직한 명문대 졸업자의 첫 월급보다 비쌌던 정도 S11

이 연구소는 1935~36년 닛폰고가쿠의 렌즈를 단 '한사 캐논'을 내놓았습니다. S11

2-4이 지역만의 특징

일본은 네 지각판의 경계 위에 있고, 활화산이 100개가 넘으며, 국토의 70%가 숲과 산지입니다. S8 에도 시대에는 나라 밖과의 관계를 네 창구가 나눠 맡았습니다. S4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다도·우키요에·계절·닫힌 섬나라라는 인상에는 맞는 부분과 고쳐야 할 부분이 함께 있습니다.

맞혀 보기

처음에 떠올린 네 인상 가운데 가장 크게 고쳐야 할 것은?

확인

계절 — 맞습니다. 8세기 『만요슈』의 시부터 기록으로 확인되고 헤이안 궁정이 이었으며, 오늘의 일본도 스스로를 계절의 나라로 소개합니다. S1·S8

확인

다도의 소박함 — 일본 미술의 한 면입니다. 같은 시대에 금빛 병풍과 화려한 꾸밈도 함께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두 박물관은 일본 미술을 꾸밈·절제·애틋함·유희의 네 열쇠말로 소개하면서도, 이 넷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밝힙니다. 수수한 색의 유행에도 사치를 막은 법이 작용했습니다. S1

확인

우키요에 — 에도의 출판문화가 키운 도시의 판화입니다. 그 안에서 원근법을 앞세운 우키에는 유럽 판화에서 배운 것이지만, 진기한 한 갈래로 남았습니다. S17·S13 서양이 이 판화들을 먼저 알아본 길은 2-5에 있습니다.

바로잡기

닫힌 섬나라 — 고쳐야 합니다. 벼농사와 철과 불교는 반도를 거쳐 들어왔고, 에도 시대에도 일본은 네 창구로 바깥과 통했습니다. S3·S4 아라노는 '쇄국'이라는 인상을 에도 막부의 일부 정책을 크게 본 것이라고 봅니다. S4

2-5다른 나라, 그리고 한국의 시각문화에 준 영향

이 절에서 볼 것

자기가 먼저, 판화가 뒤에 바다를 건넜고, 한국에는 식민 지배 속에서 미술 제도가 들어왔습니다.

일본의 물건이 유럽에 먼저 닿은 것은 자기였습니다. 1680년대에는 아리타에서 구워 이마리 항구로 실어 낸 자기가 유럽 시장에 널리 퍼졌습니다. S5

VOC 모노그램 접시

가운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머리글자(VOC)를 넣고, 테두리를 여러 칸으로 나눠 꽃무늬를 푸르게 그린 접시입니다.

아리타 자기, 「VOC 모노그램 접시 (Plate with Monogram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 아리타 자기, 1660년경)」, 청화 자기, 지름 31.4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02.447.40, 공개 도메인

판화는 개항 뒤에 건너갔습니다. 1853년 개항 뒤 일본 판화가 유럽으로 건너가, 빛과 순간의 인상을 그린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그 뒤 세대 화가들의 화면을 바꿨습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일본관이 그 통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흐름을 '자포니슴'이라 부릅니다. S17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87년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Sudden Shower over Shin-Ōhashi Bridge and Atake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7)」를 「빗속의 다리 (Bridge in the Rain, after Hiroshige - 빈센트 반 고흐, 1887)」로 따라 그렸습니다. 같은 대각선 다리와 사선 비를 유화의 붓질로 옮기고, 둘레에 일본 글자 테두리를 더했습니다. S21

반 고흐 1887
히로시게 1857
히로시게 1857반 고흐 1887
대각선 다리와 사선 비는 그대로, 반 고흐 쪽은 다리가 더 노랗고 둘레에 글자 테두리가 생겼습니다

두 그림을 겹쳐 밀어 보면, 대각선 다리와 사선 비는 그대로이고 반 고흐 쪽은 다리가 더 노랗고 둘레에 붉고 초록인 글자 테두리가 생겼습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1857, 목판, 34×24.1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P2522, 공개 도메인 · 빈센트 반 고흐, 「빗속의 다리」, 1887, 캔버스에 유채 — 반 고흐 미술관(Vincent van Gogh Foundation) s0114V1962, 공개 도메인

바깥의 평가가 일본으로 되돌아온 경우도 있습니다. 1883년 파리의 비평가 루이 곤스는 에도 시대 화가 오가타 고린을 "세계 제일의 장식 예술가"로 평했습니다. 곤스와 앤더슨 등 서양 연구자가 고린을 평한 글이 일본어로 번역되며 '장식적'이라는 표현이 생겼고, 1903년 『고린파 화집』은 고린을 따른 화파인 오가타 고린의 이름 한 글자를 딴, 금 바탕과 대담한 무늬의 화파의 특질을 '장식적'으로 정의했습니다. 다만 그 전에 일본에 꾸미는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꾸민다는 말과 꾸미는 문화는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S1

야쓰하시의 붓꽃

고린이 금박 바탕에 그린 병풍 한 쌍 가운데 한 점입니다. 파란 붓꽃 무리와 지그재그로 꺾인 나무다리가 그림자 없이 놓였습니다.

오가타 고린, 「야쓰하시의 붓꽃 (Irises at Yatsuhashi, Eight Bridges - 오가타 고린, 1709년 이후)」, 육곡 병풍 한 쌍, 금박 종이에 채색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3.7.1, .2, 공개 도메인

한국에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 속에서 일본 그림과 미술 제도가 들어왔습니다. 청일·러일 전쟁 때 종군화가로 시작된 일본 화가들의 방문은 1905년 이후 늘었습니다. 서울에 정착한 일본 화가들은 그림 교습소(화숙)를 열어 일본인 제자를 길렀고, 전람회라는 전시 제도도 이들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1910년대 중반부터 한국 화가들의 그림에 일본화의 영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S19 1933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일본 근대미술을 진열하기 시작했고, 1934년부터 일제 강점기 대한제국 황실을 이르던 이왕가가 일본 미술품을 본격적으로 사들였습니다. S20

미술사학자 강민기는 이 유입을 정치적 의도와 함께 보면서도, 한국 화단 안의 욕구가 함께 작용했으니 피동적인 유입으로만 보지 말라고 씁니다. S19

일본의 그릇과 판화는 이렇게 자기 무역과 박람회를 따라 유럽으로, 식민 지배의 제도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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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 상세 (앵커)

작품확인된 서지보여 주는 것확인
일본 주변의 판 구조 지도USGS, 지진 요약 포스터 20110311 중 Tectonic Setting 패널(크롭), 2011 — USGS, Public domain일본 둘레의 판 경계와 해구레코드 ● / 도판 ●
「마마의 단풍 (Maples at Mama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7년경)」목판, 35.9×23 cm — Met JP646, 공개 도메인앞의 단풍 가지와 번지는 하늘레코드 ● / 도판 ●
「이집트 피라미드 (The Pyramids of Egypt - 우타가와 쿠니나가, 1829)」니시키에, 25.1×38.1 cm — Met 2024.625, 공개 도메인안쪽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길과 탑레코드 ● / 도판 ◎
「지진 막이 노래 (Earthquake-Prevention Song - 작자 미상, 1855)」목판 — 와세다대 도서관, 위키미디어 공용 Namazu4, Public domain메기를 누르는 신과 돈을 뿌리는 복의 신레코드 ● / 도판 ●
「간바라의 밤눈 (Evening Snow at Kanbara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33~34년경)」목판, 22.5×34.9 cm — Met JP2492, 공개 도메인눈 쌓인 지붕과 회청색 하늘레코드 ● / 도판 ●
「검은 라쿠 찻사발 (Black Raku Tea Bowl - 작자 미상, 17세기 초)」라쿠 유약 질그릇, 높이 9.2 cm — Met 17.118.74, 공개 도메인고르지 않은 입구와 거친 표면레코드 ● / 도판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Under the Wave off Kanagawa -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0~32년경)」목판, 25.7×37.9 cm — Met JP1847, 공개 도메인색마다 판을 나눠 찍은 다색 판화레코드 ● / 도판 ●
「나가사키의 중국 배 (Chinese Ships at Nagasaki - 작자 미상, 1840년경)」목판, 16.2×46.2 cm — Met 2012.35, 공개 도메인나가사키 창구로 온 중국 상선레코드 ● / 도판 ●
「데지마 풍경 (Gezicht op Deshima - 카와하라 케이가 공방, 1833~36)」비단에 채색, 60×85 cm — 레이크스뮤지엄 RP-T-1921-488, 공용 CC0부채꼴 인공섬 데지마레코드 ◐ / 도판 ●
「VOC 모노그램 접시 (Plate with Monogram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 아리타 자기, 1660년경)」청화 자기, 지름 31.4 cm — Met 2002.447.40, 공개 도메인네덜란드 요청으로 본뜬 칸막이 테두리레코드 ● / 도판 ●
「겨울 저녁 에도 변두리 풍경 (Street Scene in the Outskirts of Edo on an Evening in Winter - 고바야시 키요치카, 1878년경)」목판, 23.3×34.6 cm — Met JP228, 공개 도메인가스등·전신주와 눈 위의 그림자레코드 ● / 도판 ●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Sudden Shower over Shin-Ōhashi Bridge and Atake - 우타가와 히로시게, 1857)」 ↔ 「빗속의 다리 (Bridge in the Rain, after Hiroshige - 빈센트 반 고흐, 1887)」목판 34×24.1 cm — Met JP2522, 공개 도메인 ↔ 유화 — 반 고흐 미술관 s0114V1962, Public domain같은 구도가 유화로 옮겨 간 자포니슴레코드 ● / 도판 ●
「야쓰하시의 붓꽃 (Irises at Yatsuhashi, Eight Bridges - 오가타 고린, 1709년 이후)」육곡 병풍 한 쌍, 금박 종이에 채색 — Met 53.7.1, .2, 공개 도메인금 바탕의 '장식적' 화면레코드 ● / 도판 ●
지형도 · 쇼지 · 오늘의 계절 사진 3점 · 오늘의 데지마위키미디어 공용 — Public domain · CC BY 2.0(Tamaki Sono) · CC0·CC0·CC BY 2.0(雷太) · CC0땅과 생활, 오늘의 풍경레코드 ● / 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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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거리

  • 국립중앙박물관·도쿄국립박물관,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2025) — 한국어로 읽는 일본 미술의 네 열쇠말
  •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2020) — 데지마와 이마리 자기
  • Sarah Schneewind, An Outline History of East Asia to 1200 (2판, 2022, 무료 공개) — 한반도와 열도의 교류사
  • 아라노 야스노리, "Foreign Relations in Early Modern Japan", nippon.com (2013) — 에도 '네 창구'
  • 강민기, "근대전환기 한국화단에의 일본화 유입과 한국화가들의 일본체험", 『미술사학연구』 253 (2007)
  • Gregory Smits, Seismic Japan: The Long History and Continuing Legacy of the Ansei Edo Earthquake (2013) — 나마즈에와 1855년 지진

근거

각 문장 뒤 [S#]는 frontmatter sources의 출처이고, ●는 원문을 직접 연 것입니다. 근거팩: _작업/_본보기_템플릿v1/_근거팩/A1A_일본_근거팩 v2.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