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핵심 설명
이 이름은 하나의 화풍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1910년 런던 전시를 연 영국 비평가 로저 프라이는, 화가들을 함께 부를 이름이 필요해 "가장 막연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골랐다고 회고했습니다 S1. 영국 테이트 미술관도 이 말을 대개 네 화가, 곧 폴 세잔·폴 고갱·조르주 쇠라·빈센트 반 고흐에게 쓰고, 넷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합니다 S9.
그렇다면 이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이어받았을까요, 거스른 것일까요? 해석은 갈립니다. 1914년 미국 비평가 아서 에디는 후기 인상주의를 인상주의에 맞선 반작용으로 보았습니다 S5. 1936년 뉴욕 현대미술관 관장 앨프리드 바는 고갱과 반 고흐는 인상주의를 떠났고, 세잔과 쇠라는 인상주의를 고치려 했다고 보았습니다 S6. 쇠라의 점을 인상주의를 이어 간 것으로 보는 비평도 있습니다 S5.
프라이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바뀌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인상주의가 빛의 색 조각만 남기고, 물체가 단단히 서 있는 모양(구조)을 잃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잔이 시작하고 고갱과 반 고흐가 이어 그 구조를 되찾았다고 썼습니다 S3. 그러나 1920년 책에서는 자기가 인상주의와의 단절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인정했습니다 S1.
시기는 1886년에서 1905년까지로 잡는 것이 보통입니다. 1886년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스스로 연 마지막 합동 전시의 해이고, 1905년은 강렬한 색을 쓰는 야수주의가 나온 해입니다 S9.
하지만 경계는 깔끔하지 않습니다. 시작 쪽을 보면, 1886년 그 마지막 전시에 쇠라와 고갱이 이미 걸렸습니다 S7·S11. 끝 쪽을 보면, 프라이가 1912년에 연 두 번째 전시에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와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들어갔습니다 S2. 그러니 1886~1905년은 편의상 나눈 구간입니다.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어느 일요일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 - 조르주 쇠라, 1884~86)」: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전에 걸린 쇠라의 그림입니다 S11. 강가 잔디의 사람과 양산, 개가 모두 작은 점으로 칠해졌고, 둘레에도 점으로 된 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조르주 쇠라,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어느 일요일」, 1884~86, 캔버스에 유채, 207.5×308.1 cm — 시카고 미술관 1926.224, 공개 도메인
2-2발생 조건
이 화가들이 활동하던 때 프랑스 미술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먼저 전시가 달라졌습니다. 1884년 심사 없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이 생겼습니다 S7·S8.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전에도 서로 방향이 다른 그림이 함께 걸렸습니다. 점으로 칠하는 쇠라의 방식(점묘)과 인상주의, 그리고 고갱의 그림이 한 전시에 있었습니다 S7·S8. 그림을 사고파는 중개상(화상)이 이 화가들을 어떻게 받쳤는지도 이 변화의 한 부분입니다. 근거 대기
화가들은 파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고갱은 파리에서 서쪽 브르타뉴의 마을 퐁타방으로, 반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근거 대기

1900년 프랑스 철도망입니다. 파리에서 철도가 사방으로 뻗어, 서쪽 브르타뉴 반도와 남쪽 지중해 해안까지 닿습니다.
"Cart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 1900, 1:800,000 — 프랑스 국립도서관 btv1b53250818b,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 조건 | → 화면에 보이는 것 | 근거 |
|---|---|---|
| 시대: 1884년 앙데팡당전 창설,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전 | 한 전시 안에 점묘·인상주의·고갱의 그림이 함께 걸림 | S7·S8·S11 |
| 시대: 프랑스 화학자 슈브뢸 등의 색 이론 | 규칙적인 작은 점, 나뉜 색 | S8 |
| 시대: 1860년대부터 파리에 들어온 일본 판화 | 화가들이 평평한 색면과 잘린 구도의 본보기로 삼음 | S6·S8 |
| 재료: 얇게 희석한 유화, 캔버스 바탕을 비워 둠 | 1880년대 중반 세잔 풍경의 옅게 칠한 면 | S8 |
| 재료: 팔레트 나이프로 두껍게 바른 유화 | 반 고흐의 두꺼운 표면 | S8 |
| 재료: 새로 나온 아연 황색 물감 | 시간이 지나 색이 변해, 지금 보이는 색이 처음 색과 다를 수 있음 | S8 |
| 지역: 브르타뉴의 마을 퐁타방 | 고갱 주변 화가 무리가 모임 | S6·S7 |
| 지역: 타히티(1844년부터 프랑스 보호령) | 고갱 그림의 소재 | S8 |
표를 묶으면 이렇습니다. 파리의 전시와 색 이론, 일본 판화가 화가들에게 새 방법을 주었고, 새 물감이 그 방법을 화면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점으로 찍은 화면과 넓은 색면의 화면, 두껍게 바른 화면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2-3식별 시그니처 해설
갈래마다 화면에서 무엇이 다를까요?
면으로 쌓은 구조 — 세잔 → 면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은 윤곽선을 먼저 긋지 않고, 안쪽의 색 구획을 쌓아 가며 물체의 덩어리를 만들었다고 프라이는 설명했습니다 S4. 세잔 자신은 "형을 빚지 말고 색을 조율하라"며, 색이 풍부할수록 형태가 충만해진다고 했습니다 S7. 1-4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코트가 면으로 나뉘어 보이는 것이 그 예입니다.
고른 점 — 쇠라 → 점 · 색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는 인상주의의 끊긴 짧은 붓질을, 같은 크기의 점을 고르게 찍는 방법으로 체계화했다고 바는 썼습니다 S6.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 방식을 "신인상주의"라고 불렀습니다 S8. 1-4의 「서커스 사이드쇼」와 2-1의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어느 일요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평평한 색면 — 고갱 → 면 · 경계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1888년 무렵 브르타뉴에서 넓고 단순한 평평한 색을 칠하고, 검은 선으로 가장자리를 강조했습니다 S6. 미국 로버트 레만 컬렉션의 미술관 도록은 그가 일본 판화보다도 더 큰 색면을 썼다고 봅니다 S8. 아래 그림은 3년 뒤 타히티에서 그린 것으로, 윤곽선보다 넓은 색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 (Ia Orana Maria - 폴 고갱, 1891)」: 오른쪽 여인의 붉은 천이 한 가지 붉은색으로 칠해졌고, 인물 피부에는 약한 명암만 있습니다.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1891, 캔버스에 유채, 113.7×87.6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1.112.2, 공개 도메인
휘는 붓질과 강렬한 색 — 반 고흐 → 질감 · 색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바의 말로는 고갱과 그를 따르던 화가들보다 더 격렬한 색과 소용돌이치는 선을 보탰습니다 S6. 처음에 떠올린 소용돌이치는 하늘이 이 갈래의 모습입니다. 세잔과 쇠라의 그림에는 이런 붓질이 없습니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 빈센트 반 고흐, 1889)」: 하늘의 흰색·청색 소용돌이가 두껍게 쌓여, 붓자국마다 작은 그림자가 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 캔버스에 유채, 73.2×93.4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93.132, 공개 도메인
2-4내부 다양성
네 갈래 안에서도 화가와 무리는 또 갈립니다.
- 세잔: 1874·1877년 인상주의전에 출품했다가 남프랑스 엑스로 가서 그렸고, 1895년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연 대형 전시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S8. 엑스 근처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자주 그렸습니다. 근거 대기


왼쪽 「생트빅투아르 산과 아르크 계곡의 고가교 (Mont Sainte-Victoire and the Viaduct of the Arc River Valley - 폴 세잔, 1882~85)」는 1886년보다 앞선 작품이라, 이 문서는 후기 인상주의가 아니라 인상주의 시기의 작품으로 봅니다. 1890년대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1-4)과 견주어 보십시오. 오른쪽은 2021년 졸라 댐 근처에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본 같은 산입니다. 그림 속 산은 낮고 둥글게, 사진 속 봉우리는 뾰족하게 보입니다. 같은 산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과 아르크 계곡의 고가교」, 1882~85, 캔버스에 유채, 65.4×81.6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9.100.64, 공개 도메인 · 사진: Wisi eu, "Sainte-Victoire et Barrage Zola", 2021 — 위키미디어 공용, CC0
- 신인상주의(쇠라를 따른 화가들): 쇠라를 따르던 화가 폴 시냑과 앙리 에드몽 크로스는, 점으로 나눈 붓질과 조화로운 구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바꿔 무정부 사회주의(정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사상)의 이상에 이바지한다고 믿었습니다 S8.
- 고갱과 퐁타방: 브르타뉴의 퐁타방에 모인 고갱과 동료들은 스스로를 종합주의자, 이어 클루아조니스트(굵은 윤곽 안에 색을 채우는 화가)라 불렀습니다 S7. 종합주의는 눈에 보이는 장면과 기억, 느낌을 단순한 색면과 선으로 합친다는 뜻입니다. 근거 대기
- 나비파: 1889년 무렵 모인 젊은 화가 무리로, 눈앞의 인상보다 기억에 기대어 그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S8. 그중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는 1890년, 그림은 전쟁터의 말이나 벗은 여인이나 어떤 이야기이기 전에 "일정한 순서로 색을 입힌 평평한 면"이라고 썼습니다 S6.
2-5구별 포인트
이웃한 이름들과는 어떻게 가를까요?
2-6흔한 오해
- "후기 인상주의 = 소용돌이치는 하늘": 반 고흐 한 갈래의 모습입니다. 세잔의 면, 쇠라의 점, 고갱의 색면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2-3).
- "인상주의의 발전된 형태" 또는 "완전한 단절": 2-1에서 본 대로 해석이 갈리고, 이어받음과 반작용이 함께 있습니다. 바는 인상주의의 태도와 기법이 입체주의(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양을 한 화면에 모으는 그림)까지 남았다고 보았습니다 S6.
- "세잔은 기하학자였다": "자연을 원기둥·구·원뿔로 다루라"는 말은 세잔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후배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회상으로 전한 말입니다. 뒤의 화가들이 이 한 구절을 붙잡았습니다 S5·S7. 그래서 이 말만으로 세잔을 기하학자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잔의 그림에서 실제로 보이는 것은 색의 단계와 면의 쌓임입니다 S4.
- "화가의 광기나 반항이 곧 양식": 프라이는 세잔이 무정부주의자라는 전설과 달리, 실제로는 소심하고 보수적인 지방 신사였다고 썼습니다 S4. 반 고흐도 즉흥으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체부 조제프 룰랭의 가족을 그린 초상들은 1888년 7월부터 계획한 연작이었습니다 S8.
2-7무엇을 낳았나
후기 인상주의 뒤에는 무엇이 왔을까요? 바는 그 뒤의 흐름을 두 갈래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세잔과 쇠라에서 입체주의를 거쳐 기하학적 추상(도형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으로 가는 갈래이고, 다른 하나는 고갱에서 마티스의 야수주의를 거쳐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의 추상으로 가는 갈래입니다 S6. 두 갈래는 한 화가 안에서 섞이기도 합니다 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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