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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레의 밤나무 길모네의 생라자르 역
D 사조 · 1870~1886 · v3

인상주의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인상주의를 "밝은 색, 대담한 붓질, 반항 정신"이라는 말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1874년 비평가들은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대충 그린 미완성이라 비웃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무엇을 택했던 걸까요?

01 · 핵심

1-1정의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인상주의를 "밝은 색, 대담한 붓질, 반항 정신"이라는 말로 소개합니다. S7 그런데 1874년 비평가들은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대충 그린 미완성이라 비웃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무엇을 택했던 걸까요? 인상주의는 1874~1886년 정부의 공식 미술전 밖에서 여덟 번 독립 전시를 연 파리의 화가들과, 한순간의 빛을 짧은 붓질과 색 있는 그림자로 옮긴 그림입니다. S1

1-2알아보는 법

  1. 그림자가 검정·갈색이 아니라 파랑·보라입니다.
  2. 하늘·물·풀밭이 짧게 끊긴 여러 색 붓질로 채워집니다.
  3. 형태의 가장자리가 또렷한 선 없이 풀립니다.
  4. 기차역·거리·교외의 물가처럼 그때의 파리 생활이 소재입니다.

1-3자주 보이는 현상

색 있는 그림자(색), 붓 자국(질감), 풀린 가장자리(경계), 같은 대상의 되풀이(반복)가 자주 보입니다. S1

1-4대표 사례

시슬레의 밤나무 길모네의 생라자르 역

풍경화가 시슬레는 보라 그림자와 잎 사이로 조각조각 보이는 하늘을, 모네는 기차역의 증기를 짧은 붓질로 그렸습니다.

Met 1975.1.211 · AIC 1933.1158, 공개 도메인 S13·S11

2-1핵심 설명

이 이름 아래 모인 화가들은 무엇을 함께했을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들을 묶은 조건은 정부가 여는 공식 미술전인 프랑스 정부가 주관하던 공식 미술 전시. 심사위원이 출품작을 골랐습니다에서 독립했다는 것 하나였다고 설명합니다. S1 1874년부터 1886년까지 독립 전시가 여덟 번 열렸고, 회마다 참가자는 9명에서 30명 사이였습니다. 여덟 번 모두 참가한 화가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S1

그럼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1874년 4월 25일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풍자 신문 『르 샤리바리』에, 모네의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 클로드 모네, 1872)」를 두고 두 관람객이 주고받는 비웃음 섞인 대화를 실었습니다. 그림 제목의 '인상'이 이 비웃음의 표적이었습니다. S8

인용

"처음 만들다 만 벽지도 이 바다 그림보다는 더 완성돼 있다!" — 루이 르루아, 『르 샤리바리』, 1874 S8

소리 내어 읽기

Le papier peint à l'état embryonnaire est encore plus fait que cette marine-là !

처음 만들다 만 벽지도 이 바다 그림보다는 더 완성돼 있다!

Louis Leroy, Le Charivari, 1874-04-25

인상, 해돋이

「인상, 해돋이」: 푸른 회색 안개 속 항구 위로 붉은 해가 떠 있고, 물 위에 주황 반사가 짧은 붓질로 끊겨 있습니다. 작은 배들이 어둡게 보입니다. S14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캔버스에 유채 —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위키미디어 공용 사본(공개 도메인 표시) 그림의 서명에는 '72'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에는 1873년이 적혀 있습니다. S3

붉은 해와 물 위에 짧게 끊어 놓은 주황 반사

그런데 같은 해 4월 29일, 비평가 쥘앙투안 카스타냐리는 이 화가들을 비웃지 않고 처음으로 '인상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S9

인용

"그들은 풍경이 아니라 풍경이 일으킨 감각을 그린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자다." — 카스타냐리, 1874 S9

조롱으로 시작한 이름을 화가들은 오히려 영예의 표시로 받아들였습니다. S3 첫 전시는 유파 이름 없이 '무명 화가·조각가·판화가 협회'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S1·S10

맞혀 보기

르루아가 비웃은 모네 그림의 제목에 들어 있던 낱말은?

2-2발생 조건

이 절에서 볼 것

살롱의 낙선, 새로 뚫린 대로와 철도, 밝은 새 물감, 그리고 일본 판화가 한 시기에 겹쳤습니다.

어떤 조건이 겹쳤을까요?

첫째, 제도. 살롱 심사위원단은 1860년대 후반 모네 같은 화가들의 출품작을 대부분 떨어뜨렸습니다. S2 그래서 이들은 1874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카퓌신 대로 35번지에 있던 사진가 나다르의 옛 작업실에서 따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S2 관람객 수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숫자 하나

3,500명 대 450,000명 — 첫 독립 전시의 관람객과, 두 주 뒤 열린 그해 살롱의 관람객 S2

나다르 사진관 정면

첫 전시가 열린 건물입니다. 사진가 나다르의 사진관으로, 위층의 큰 유리창이 보입니다. 1861~1872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S14

나다르, 사진관 정면 사진, 1861~1872년 무렵 — 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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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큰 유리 작업실 첫 전시가 열린 사진가의 작업실
제1회 전시 도록 표지

1874년 제1회 전시의 도록(전시 안내 책자) 표지입니다. 맨 위에 'Société anonyme'(무명 협회)라는 이름이 있고, 도록 값 50상팀(프랑의 100분의 1 단위), 전시 기간, 입장료 1프랑, 주소 '카퓌신 대로 35번지'가 적혀 있습니다. S10

무명 화가·조각가·판화가 협회, 『첫 전시 도록』 표지, 1874 — 프랑스 국립도서관 Gallica,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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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무명 협회 'Société anonyme' — 유파 이름 대신 쓴 협회 이름
  2. 235 Boulevard des Capucines 첫 전시장 주소
  3. 3Prix 50 centimes 도록 값 50상팀
  4. 415 avril – 15 mai 전시 기간

둘째, 도시와 교외. 1853~70년 파리는 낡은 건물을 헐고 넓은 대로와 공원을 냈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1870~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뒤 도시가 다시 지어지며 여러 계층이 섞이는 공공장소가 생겼습니다. 철도는 주말에 교외로 소풍 가는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S1 모네가 살던 파리 근교 마을 아르장퇴유는 파리에서 기차로 15분 거리였습니다. S3 기차역과 교외의 물가가 화가들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S1

생라자르 역

「노르망디 열차의 도착, 생라자르 역 (Arrival of the Normandy Train, Gare Saint-Lazare - 클로드 모네, 1877)」: 유리와 철골 지붕 아래 오른쪽에 검은 기관차가 있고, 흰색·하늘색 증기가 짧은 붓질로 피어오릅니다. 모네는 파리와 노르망디를 잇는 이 역을 열두 점 그렸고, 그중 여덟 점을 1877년 제3회 전시까지 완성했습니다. S11

클로드 모네, 「노르망디 열차의 도착, 생라자르 역」, 1877, 캔버스에 유채, 60.3×80.2 cm — 시카고 미술관 1933.1158, 공개 도메인

유리 지붕 아래로 피어오르는 흰색·하늘색 증기의 짧은 붓질

셋째, 물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화가들이 새로 나온 합성 안료를 쓰고, 그림 위에 광택용 투명 칠(마른 그림 위에 광택을 내려 바르는 투명한 칠)을 바르지 않아 당시 눈에 충격적일 만큼 밝은 색을 냈다고 설명합니다. S1 테이트는 1870년대에 물감 튜브가 퍼지며 야외에서 그리는 일이 더 인기를 얻었다고 적습니다. S7

넷째, 일본 판화. 1853년 일본이 항구를 연 뒤 일본 목판화가 유럽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S6 모네는 그 판화를 네덜란드의 향신료 가게에서 포장지로 처음 봤다는 이야기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에 실려 있습니다. S6

2-3식별 시그니처 해설

이 절에서 볼 것

색 있는 그림자, 끊긴 붓질, 풀린 가장자리, 그리고 같은 대상을 다른 빛 아래 되풀이해 그리기.

화면에서 무엇이 인상주의를 알려 줄까요?

  • 색 있는 그림자 → 색: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화가들이 그림자와 밝은 곳을 회색이나 검정 대신 파랑·보라처럼 색이 있는 색으로 칠했다고 씁니다. S1
  • 끊긴 붓질과 풀린 가장자리 → 질감·경계: 테이트는 빠르고 끊어진 붓질로 빛의 덧없음을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S7
  • 연작 → 반복: 모네는 생라자르 역 이후 같은 대상을 거듭 그렸습니다. 1890~91년에는 모네가 살던 마을 지베르니의 밀짚단을 여러 이젤에 동시에 그렸고, 1891년 5월 파리의 화랑에서 15점을 한 방에 걸었습니다. S11 독립 전시가 끝난 뒤의 일이지만, 이 방식이 어디까지 갔는지 보여 줍니다.
밀짚단, 여름의 끝밀짚단, 해 질 녘·가을밀짚단, 일몰·눈 효과

같은 밀짚단을 다른 빛 아래 그린 세 점입니다. 여름의 끝에는 분홍과 연두가, 가을 해 질 녘에는 살구색과 회녹색이, 눈 덮인 일몰에는 하늘의 주황과 눈 위 청보라 그림자가 화면을 덮습니다.

「밀짚단 (Stacks of Wheat, End of Summer - 클로드 모네, 1890~91)」·「밀짚단 (Stacks of Wheat, End of Day, Autumn - 클로드 모네, 1890~91)」·「밀짚단 (Stacks of Wheat, Sunset, Snow Effect - 클로드 모네, 1890~91)」, 캔버스에 유채 — 시카고 미술관 1985.1103 · 1933.444 · 1922.431, 공개 도메인

여름의 끝
여름의 끝해 질 녘·가을일몰·눈 효과

대표 색

  • 눈 위 청보라 그림자 #8089A6
  • 어두운 청회색 #686A80
  • 분홍 회색 #A58C8D
  • 하늘의 주황 #E39A5A

같은 방식을 모네는 루앙 대성당에도 썼습니다. 1892~93년 대성당 맞은편 방을 빌려, 빛이 바뀔 때마다 캔버스를 바꿔 가며 정면을 그렸습니다. S3 이 연작도 독립 전시 기간 뒤의 일입니다.

루앙 대성당, 햇빛루앙 대성당

같은 대성당 정면입니다. 왼쪽은 크림색과 금빛, 오른쪽은 연보라와 청회색 터치로 덮였습니다. S12 클로드 모네, 「루앙 대성당, 서쪽 정면, 햇빛 (Rouen Cathedral, West Façade, Sunlight - 클로드 모네, 1894)」·「루앙 대성당, 서쪽 정면 (Rouen Cathedral, West Façade - 클로드 모네, 1894)」, 캔버스에 유채, 약 100×66 cm — 워싱턴 국립미술관 1963.10.179 · 1963.10.49, 공개 이미지

다른 시간대
햇빛
햇빛다른 시간대
같은 정면이 한쪽은 크림색·금빛, 한쪽은 연보라·청회색입니다
2-4내부 다양성

이 절에서 볼 것

같은 전시에 나간 화가들도 붓질과 소재가 서로 달랐습니다.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얼마나 달랐을까요? 여덟 번의 전시에 나간 화가들은 윤곽을 지키는 사람부터 매끈하게 칠하는 사람까지 서로 달랐습니다. S5·S11

  • 드가: 끝내 '인상주의자'라는 이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창립 멤버이자 전시 조직자였습니다. 극장과 카페 같은 실내를 그리며 인물의 윤곽을 또렷하게 지켰습니다. S5
  • 카유보트: 눈에 보이는 대로 매끈하게 그리는 19세기 중반 눈에 보이는 대로 매끈하게 그리던 흐름 쪽의 기법으로 인상주의의 도시 소재를 그렸습니다. S11
  • 카사트: 드가의 초대로 1877년 합류한 유일한 미국인 참가자로, 여덟 번 가운데 네 번 참가했습니다. S4
  • 모리조: 남성 화가가 자주 그린 화장하는 여인을, 에로틱하지 않게 여성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여덟 번 가운데 일곱 번 참가했고, 여덟 번 모두 참가한 화가는 피사로였습니다. S11·S1
무용 수업발코니에서화장대 앞의 여인

왼쪽 드가의 「무용 수업 (The Dance Class - 에드가 드가, 1874)」은 인물 윤곽이 또렷하고, 가운데 카사트의 「발코니에서 (On a Balcony - 메리 카사트, 1878~79)」는 신문 읽는 여인 뒤 꽃밭을 짧은 터치로 채웠으며, 오른쪽 모리조의 「화장대 앞의 여인 (Woman at Her Toilette - 베르트 모리조, 1875~80)」은 흰 옷과 거울 쪽이 흐릿하게 풀립니다.

에드가 드가, 「무용 수업」, 1874, 캔버스에 유채, 83.5×77.2 cm — Met 1987.47.1 · 메리 카사트, 「발코니에서」 — AIC 1938.18 · 베르트 모리조, 「화장대 앞의 여인」 — AIC 1924.127, 모두 공개 도메인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카유보트는 비를 직접 그리지 않고 우산과 젖은 포석의 반사로 보여 줍니다. 소장처는 화면 끝에서 잘린 구도가 새로 퍼진 사진에서 왔을 수 있다고 봅니다. S11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Paris Street; Rainy Day - 귀스타브 카유보트, 1877)」: 비 젖은 포석 위로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걷고, 초록 가로등 기둥이 화면을 세로로 가르며, 오른쪽 끝의 남자는 화면에서 잘렸습니다. 모네의 생라자르 역과 같은 1877년 제3회 전시에 나갔습니다. S11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 캔버스에 유채, 212.2×276.2 cm — 시카고 미술관 1964.336, 공개 도메인

카유보트
모네
모네카유보트
같은 1877년 제3회 전시, 한쪽은 끊긴 붓질, 한쪽은 매끈한 칠
  1. 가로등 기둥이 화면을 세로로 가르는 선
  2. 오른쪽 끝에서 잘린 남자
비는 어떻게 보일까요? 가린 포석을 눌러 보세요

르누아르의 「두 자매 (Two Sisters, On the Terrace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1881)」는 한 화면에 두 방식이 있습니다. 소장처는 얼굴은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매끈하게 칠했고, 뒤 배경은 짧게 끊은 붓질로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S11

두 자매

「두 자매」: 빨간 모자의 젊은 여인과 꽃 모자의 어린 소녀 뒤로 강과 나무가 짧은 붓질로 풀려 있습니다. S11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두 자매」, 1881, 캔버스에 유채, 100.4×80.9 cm — 시카고 미술관 1933.455, 공개 도메인

어린 소녀의 매끈한 얼굴 — 배경의 붓질과 견주어 보세요

소장처 기록에 따르면 이 그림은 1882년 제7회 전시에 나갔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은 르누아르가 1877년 이후 이 그룹과 전시하지 않았다고 적어 두 기록이 엇갈립니다. S11

2-5구별 포인트

이 절에서 볼 것

같은 크기의 점으로 찍은 그림은 후기 인상주의로, 매끈한 사실 묘사는 사실주의로 보냅니다.

이웃한 이름들과는 어떻게 가를까요? 붓 자국의 크기와 간격이 고르냐가 첫 기준입니다. S1

  • 후기 인상주의와: 붓 자국이 같은 크기의 점으로 고르게 찍혀 있으면(점묘) D35 후기 인상주의로 보냅니다. 1886년 마지막 전시에는 점을 찍어 그린 화가들이 들어왔습니다. S1
  • 사실주의와: 카유보트처럼 인상주의 전시에 나갔어도 붓질이 매끈하면 D32 사실주의 쪽 기법이라고 소장처는 설명합니다. S11
2-6흔한 오해

이 절에서 볼 것

대충 그린 것도, 모두 야외에서 끝낸 것도, 튜브 물감이 낳은 것도 아닙니다.

샹의 1874년 풍자화

1874년 풍자 만화가 샹이 첫 전시를 놀린 그림입니다. 그림 아래 손글씨를 보세요. "그림의 혁명, 공포로 시작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가 적혀 있습니다. S14

샹(아메데 드 노에), 첫 인상주의 전시 풍자화, 1874 —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위키미디어 공용, 공개 도메인

세 오해 모두 그림을 직접 보면 풀립니다. 카드 뒤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대충 그린 미완성": 1874년 르루아 같은 비평가의 조롱에서 나왔습니다. S8 같은 해 카스타냐리는 이들이 바꾼 것이 대상이 아니라 어디까지 마무리하느냐의 정도라고 정리했고 S9,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들이 공들여 짠 구도를 갖췄다고 설명합니다. S1
  • "야외에서 다 그렸다": 모네 이전의 바르비종 화가들은 야외에서 스케치만 했고, 모네는 큰 캔버스를 야외에서 시작해 작업실에서 마무리했습니다. S3 밀짚단도 작업실에서 색의 조화를 다듬었습니다. S11
  • "튜브 물감 때문에 생겼다": 테이트는 튜브가 퍼지며 야외 작업이 더 인기를 얻었다고만 씁니다. S7
2-7무엇을 낳았나

이 절에서 볼 것

살롱 밖에서 따로 전시하는 길을 열었고, 뒤이은 화가들이 그 길로 나왔습니다.

이 독립 전시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상주의가 뒤이은 새로운 미술의 발판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뒤에 따로 길을 연 화가 세잔과 고갱도 인상주의와 함께 출발했다고 적습니다. S1 마지막 전시에는 점을 찍는 화가들이 들어왔고, 그 갈래는 D35 후기 인상주의로 이어집니다. S1

정리하면

처음의 두 모습으로 돌아가 봅니다.

'밝은 색과 대담한 붓질'은 맞습니다.

합성 안료와 광택 칠을 하지 않은 표면이 그 밝음을 냈습니다.

S1 '반항 정신'은 살롱 밖에서 따로 전시한 선택에서 확인됩니다.

S1 그러나 '대충 그린 그림'은 1874년의 조롱이 남긴 말입니다. S8 이 화가들은 기차역과 거리, 교외의 빛을 짧은 붓질과 색 있는 그림자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같은 대상을 다른 빛 아래 되풀이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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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 상세 (앵커)

작품확인된 서지보여 주는 시그니처확인
「밤나무 길 (The Allée of Chestnut Trees - 알프레드 시슬레, 1878)」캔버스에 유채, 50.2×61 cm — Met 1975.1.211, isPublicDomain: trueD1·D2·D3: 보라 그림자, 끊긴 하늘, 풀린 줄기레코드 ● / 도판 ●
「노르망디 열차의 도착, 생라자르 역 (Arrival of the Normandy Train, Gare Saint-Lazare - 클로드 모네, 1877)」캔버스에 유채, 60.3×80.2 cm — AIC 1933.1158, is_public_domain: trueD2·D4·D6: 증기의 끊긴 붓질, 기차역레코드 ● / 도판 ◎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Paris Street; Rainy Day - 귀스타브 카유보트, 1877)」캔버스에 유채, 212.2×276.2 cm — AIC 1964.336D5·D6 + 전시 출품(부착 규칙 3): 매끈한 칠, 잘린 인물레코드 ● / 도판 ◎
「무용 수업 (The Dance Class - 에드가 드가, 1874)」캔버스에 유채, 83.5×77.2 cm — Met 1987.47.1D5·D6 + 전시 출품: 또렷한 윤곽레코드 ● / 도판 ●
밀짚단 3점 · 루앙 대성당 2점(1890~94, 기간 밖)AIC 1985.1103·1933.444·1922.431 · NGA 1963.10.179·1963.10.49D1·D2: 연작의 색 그림자레코드 ● / 도판 ◎
「발코니에서」 · 「화장대 앞의 여인」 · 「두 자매」AIC 1938.18 · 1924.127 · 1933.455D2·D3(배경), 전시 출품레코드 ● / 도판 ◎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 클로드 모네, 1872)」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 위키미디어 공용 PD 표시이름의 출처레코드 ◐ / 도판 ●
도록 표지 · 나다르 사진관 · 샹 풍자화(1874)BnF(Gallica·공용), 공개 도메인독립 전시와 그 반응레코드 ◐~● / 도판 ●

AIC 도판은 시카고 미술관 이미지 서버가 보안 확인으로 막혀 같은 작품의 위키미디어 공용 사본(공개 도메인 표시)을 썼습니다.

더 읽을거리

  • Charles S. Moffett 외, The New Painting: Impressionism 1874–1886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1986) — 여덟 번의 전시 ◐
  • Robert L. Herbert, Impressionism: Art, Leisure, and Parisian Society (Yale, 1988) ◐
  • Linda Nochlin 편, Impressionism and Post-Impressionism 1874–1904: Sources and Documents (1966) — 당대 비평 원문 ◐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Heilbrunn Timeline, "Impressionism: Art and Modernity" — 무료 공개 ●

근거

출처는 frontmatter sources에 있습니다. ● 원문 열람, ◐ 공용 파일 설명·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