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핵심 설명
이 절에서 볼 것
이 그림들을 묶는 것은 하나의 화풍이 아니라, 주문 대신 시장에서 팔렸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북부 주들은 스페인에 맞선 80년 전쟁이 1648년에 끝나 왕 없는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개신교 국가라 화가들이 교회나 궁정의 큰 주문에 기댈 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S1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화가가 그림을 상품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을 찾는, 오늘과 비슷한 미술 시장이었습니다. 화가들은 팔릴 만한 소재를 직접 골라 그렸고, 그래서 풍경·정물 같은 세속 그림이 늘었습니다. S1

「밀밭 (Wheat Fields - 야코프 판 라위스달, 1670년경)」: 화면 위 3분의 2가 구름 가득한 하늘이고, 구름 틈으로 내려온 햇빛이 밀밭 한쪽을 밝힙니다. 교회 주문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린 세속 그림의 한 예입니다. S3
야코프 판 라위스달, 「밀밭」, 1670년경, 캔버스에 유채, 100×130.2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23, 공개 도메인 S1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1870년 문을 열 때 이 시기 그림이 컬렉션의 중심이 된 것도, 옛 네덜란드 식민지 뉴암스테르담과 인연이 있던 17세기 뉴욕은 네덜란드 식민지 '뉴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들의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S1
연표 · 끌어 보기
- 1566성상 파괴 — 교회 제단화·조각이 대량으로 부서짐 S1
- 1602동인도회사 설립 S7
- 1611델프트 성 루카 길드 창립 기록 S7
- 1628클라스의 해골 정물 S4
- 1641화가 필립스 앙헬의 연설 「그림 찬가」 S1
- 1644~52중국 내란으로 자기 수입이 20만 점에서 1.5만 점으로 S7
- 164880년 전쟁 끝·독립 완결 · 레이던 길드 창립 S1
- 1649위트레흐트 그림 복권 S11
- 1656렘브란트 지불 불능 선언 S6
- 1670년대불경기 — 페르메이르 말년이 어려워짐 S5
- 1678화가 호흐스트라텐의 화론 출간 S2
- 1681시인 안드리스 펄스가 렘브란트를 풍자 S1
2-2발생 조건
이 절에서 볼 것
텅 빈 교회, 도시로 몰린 사람들, 장터와 화상, 그리고 바다 건너온 물건이 한 세기에 겹쳤습니다.
이 그림들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을까요?
첫째, 텅 빈 교회. 1566년 8월 개신교 열성파가 가톨릭 미사에 쓰던 제단화와 조각을 수많은 교회에서 부쉈습니다. S14 공화국의 교회는 흰 벽으로 비워졌고, 그림은 교회가 아니라 개인 집으로 갔습니다. S1 그래도 인구의 상당수는 가톨릭이었고, 델프트의 화가 페르메이르도 가톨릭이었습니다.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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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화가들이 교회·궁정 주문에 기대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공식적으로 개신교 국가여서 교회·궁정의 큰 주문이 없었고, 시장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둘째, 도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풍경화 해설은 세속 주제가 생긴 가장 근본 요인으로 16~17세기 도시화를 꼽습니다. 홀란트주는 인구의 70퍼센트까지가 도시와 읍에 살았고, 상인과 전문직 후원자는 자기 일상과 가치를 비추는 그림을 원했습니다. 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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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트주 인구 가운데 도시와 읍에 산 비율은 최대 몇 퍼센트였을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은 70퍼센트까지라고 적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이 그림의 주 고객이었습니다.
셋째, 시장. 화가는 장터와 그림을 사고파는 상인, 자기 작업실에서 그림을 팔았습니다. S8 풍경화는 주문 제작이 드물었고, 화가는 서명과 전문 소재로 알려졌습니다. 얼음 위 풍경만 그린 화가가 있을 만큼 소재가 나뉘었습니다. S3 도시마다 화가·도공·유리공·화상이 모인 도시별 조합. 외지 그림 판매를 막고 도제를 키웠습니다가 있었는데, 델프트 길드는 길드원에게만 그림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S7 반대로 레이던은 1648년까지 길드가 없어 이웃 도시의 그림이 일 년 내내 들어와 팔렸습니다. S10
2차 정리에 따르면 1649년 위트레흐트에서는 그림 158점을 걸고 복권 2,182장을 팔았습니다. S11 값의 폭도 컸습니다. 판화 한 장은 작은 꽃 정물 값의 3분의 1이었고, 레이던의 화가 도우의 아주 매끈한 그림은 1,000당시 네덜란드 화폐 단위가 넘어 안락한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S8 한편 암스테르담 화상 세 곳의 재고를 조사한 연구는, 성경 이야기를 그린 값싼 그림이 평균 4길더도 안 되는 값으로 대량 돌았다고 밝힙니다. S12
넷째, 바다. 1602년 세워진 네덜란드 무역회사. 아시아의 자기·향신료·비단을 들여왔습니다는 아시아의 자기·칠기·비단을 들여왔고, 칼프 같은 화가는 정물에 중국 자기를 넣었습니다. S9 1644~47년 중국 내란으로 자기 수입이 줄자, 그 빈자리를 델프트 도공이 만든 푸른 무늬 도자가 메웠습니다. S7

「과일, 유리잔, 만력 사발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Fruit, Glassware, and a Wanli Bowl - 빌럼 칼프, 1659)」: 거의 검은 바탕 가운데 파랑·흰 무늬의 중국 사발에 과일이 담겼고, 레몬 껍질이 나선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뒤에 가늘고 긴 잔과 금빛 잔이 섰습니다. S15
빌럼 칼프, 「과일, 유리잔, 만력 사발이 있는 정물」, 1659, 캔버스에 유채, 58.4×50.8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3.111, 공개 도메인



그런데 이 화면에 없는 것도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정물이 새 무역 항로와 공화국의 경제적 성공을 보여 주는 한편, 식민 전쟁과 노예의 인적 비용은 화면에서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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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 시기 정물에서 '빠졌다'고 지적한 것은?
정물은 무역의 성공을 보여 주지만, 그 무역을 떠받친 식민 전쟁과 노예의 비용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무역은 땅도 넓혔습니다. 무역·식민 국가에 맞춰 이국 풍경도 그려졌습니다. S1

「브라질 풍경 (A Brazilian Landscape - 프란스 포스트, 1650)」: 키 큰 열대 나무와 선인장이 선 언덕 아래로 작은 사람들의 행렬이 지납니다. S15
프란스 포스트, 「브라질 풍경」, 1650, 나무판에 유채, 61×91.4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81.318, 공개 도메인


2-3식별 시그니처 해설
이 절에서 볼 것
한쪽에서 들어오는 빛, 손에 잡힐 듯한 물건의 질감, 그리고 일상 소품에 숨은 교훈.
이 시기 그림은 세 가지로 알아봅니다.
- 한쪽 창의 빛 → 빛: 델프트의 화가 데 호흐와 페르메이르는 명료하고 균형 잡힌 구성에 꼼꼼한 사실적 빛을 보였습니다. S2 풍경에서는 구름 틈 빛이 땅을 훑습니다. S1
- 물건의 질감 → 질감: 1650~60년대 암스테르담이 금융 중심이 되자, 칼프 같은 화가는 수입 과일·중국 도자기·베네치아 유리·은 식기가 반짝이는 값비싼 수입품을 쌓아 보여 주는 호화 정물. 네덜란드 말로 '과시'를 뜻하는 pronk라 불렀습니다을 그렸습니다. S4
- 숨은 교훈 → 상징: 정물에 도덕적 의미가 흔했습니다. S4 장르 그림의 소품과 먹을거리에도 암시가 숨어 있었고, 당대 관람자는 그림과 짧은 시로 교훈을 풀어 놓은 책. 당대 독자가 그림 속 상징을 읽는 열쇠였습니다을 알아 이를 읽었습니다. S2

「물 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 - 요하너스 페르메이르, 1662년경)」: 여인이 한 손으로 왼쪽 납틀 창을 열고 다른 손으로 금속 주전자를 듭니다. 오른쪽 벽에 큰 지도, 탁자에 붉은 무늬 양탄자와 놋 대야가 있습니다. 화면 전체가 은회색 빛에 잠깁니다. S15
요하너스 페르메이르, 「물 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1662년경, 캔버스에 유채, 45.7×40.6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89.15.21, 공개 도메인




대표 색
- 은회색 벽
#858073 - 그늘진 벽
#5D5C50 - 갈색 탁자 그늘
#48402F - 어두운 청남 옷
#1B2129

「방문 (The Visit - 피터르 데 호흐, 1657년경)」: 왼쪽 창 하나에서 빛이 들어와 붉은 윗옷의 여인과 탁자의 세 사람을 비춥니다. 천장 들보와 바닥 선을 따라가면 뒷벽 지도 아래쪽 한 점으로 모입니다. S2
피터르 데 호흐, 「방문」, 1657년경, 나무판에 유채, 67.9×58.4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9.100.7, 공개 도메인

- 천장 들보가 모이는 선
- 바닥 선을 따라 그은 선
- 창틀 윗선

눌러 보기 · 지점 4곳
- 1창 빛은 왼쪽 창 하나에서 들어옵니다
- 2지도 뒷벽에 걸린 지도
- 3붉은 윗옷의 여인 시중드는 사람
- 4검은 모자 바닥에 떨어진 모자

정물은 시대와 도시에 따라 달랐습니다. 하를럼에서는 색을 줄인 아침 식탁 정물이 많았고(헤다), 클라스는 같은 단색조 안에 해골을 놓았습니다. 레이던에서는 해골·꺼진 등잔으로 삶의 덧없음을 말하는 라틴어로 '헛됨'. 해골·꺼진 등잔으로 삶의 덧없음을 말하는 정물가, 암스테르담에서는 과시 정물이 많았습니다. S4


1603년부터 1659년까지 정물 네 점을 넘겨 보면, 해골이 사라지고 은잔과 유리의 반사, 수입품이 화면을 차지해 갑니다. S4
「바니타스 정물 (Vanitas Still Life - 야크 더 헤인 2세, 1603)」·「굴, 은 타차, 유리잔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Oysters, a Silver Tazza, and Glassware - 빌럼 클라스 헤다, 1635)」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74.1 · 2005.331.4, 공개 도메인 S15





「해골과 깃펜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a Skull and a Writing Quill - 피터르 클라스, 1628)」: 나무판 위 해골 옆에 쓰러진 포도주 잔, 깃펜과 펼친 종이, 책, 꺼진 등잔이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그림과 더 헤인 2세의 1603년 그림을 교훈형 정물로 꼽습니다. S4 가로 약 36cm로 작습니다. S15
피터르 클라스, 「해골과 깃펜이 있는 정물」, 1628, 나무판에 유채, 24.1×35.9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49.107, 공개 도메인




대표 색
- 가장 어두운 바탕
#14100C - 나무판 그늘
#45321C - 해골과 종이의 밝은 갈색
#84673F - 책 표지
#614C2C
모든 소품이 경고일까요? 같은 해설은 판 베이에런 정물 속 회중시계를 두고 경고라기보다 지적 재치일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S4
2-4내부 다양성
이 절에서 볼 것
한 세기 한 나라 안에 고요한 방과 소란한 집, 손바닥만 한 그림과 사람 키만 한 그림이 함께 있었습니다.
같은 이름 아래 얼마나 달랐을까요?
고요와 소란. 테르보르흐는 상류층 실내를 보석 같은 작은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S2 얀 스텐의 「방탕한 집안 (The Dissolute Household - 얀 스텐, 1663~64년경)」은 반대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고기와 깨진 병은 방탕을 경고하고, 목발과 딸랑이는 가난과 병을 암시해, 웃음과 교훈이 한 화면에 함께 있습니다. S2


왼쪽 「호기심 (Curiosity -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1660~62년경)」은 은빛 새틴 드레스와 푸른 벽의 정돈된 방이고, 오른쪽 스텐의 그림은 잠든 안주인 아래 바닥에 악기·깨진 병·고기와 고양이가 흩어져 있습니다.
테르보르흐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49.7.38, 76.2×62.2 cm · 스텐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82.60.31, 108×90.2 cm, 공개 도메인 S15



눌러 보기 · 지점 6곳
- 1고기 바닥에 떨어진 고기 — 방탕에 대한 경고
- 2고양이 고기를 노리는 고양이
- 3뒤집힌 현악기 바닥에 뒹구는 악기
- 4깨진 병 경고의 소품
- 5졸고 있는 안주인 집안이 돌아가는 동안 잠든 안주인
- 6잔을 따르는 하녀 계속 술을 따름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같은 화가, 다른 장르. 하를럼의 화가 프란스 할스는 웃음판과 시민 초상을 함께 그렸습니다. 할스의 놀이꾼 그림에는 소품과 먹을거리에 성적 암시가 숨어 있다고 해설은 씁니다. S2 초상의 주문자는 옷·소품·문장으로 신분을 드러냈습니다. S1


같은 화가가 그렸습니다. 왼쪽은 붉은 비단옷의 인물과 웃는 남자들이 화면을 빽빽이 채우고, 오른쪽은 검은 옷에 흰 레이스 깃의 남자가 어두운 단색 배경 앞에 섰습니다.
「사순절 전 축제의 놀이꾼들 (Merrymakers at Shrovetide - 프란스 할스, 1616~17년경)」·「파울뤼스 퍼르슈이르 (Paulus Verschuur - 프란스 할스, 1643)」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05 · 26.101.11, 공개 도메인 S15


작은 그림과 큰 그림. 대부분은 일반 주택에 걸 작은 그림이었습니다. S8 레이던의 '섬세한 화가'. 작은 화면에 붓 자국 없이 아주 매끈하게 그린 화가들 도우의 작은 그림은 대량으로 만들어졌고 큰 값을 받았습니다. S2 반면 렘브란트가 고대 철학자를 그린 「호메로스 흉상을 짚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 렘브란트 판 레인, 1653)」는 세로 143cm가 넘어 사람 키만 합니다. S15


왼쪽 「저녁 학교 (An Evening School - 헤릿 도우, 1655~57년경)」는 세로 25cm 남짓한 나무판에 촛불 하나가 밝히는 교실을 그렸고, 오른쪽 렘브란트의 그림은 거의 검은 배경에서 얼굴과 흰 소매, 금 사슬만 떠오릅니다.
도우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40.64, 25.4×22.9 cm · 렘브란트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61.198, 143.5×136.5 cm, 공개 도메인 S15



맞혀 보기
클라스의 해골 정물은 가로 몇 cm쯤일까요?
가로 35.9cm, 세로 24.1cm입니다. 집 벽에 거는 크기였습니다.
가장 격이 높은 장르를 평범한 얼굴로. 성경·신화·고대 이야기를 그린 그림. 당시 가장 격이 높다고 여긴 장르는 가장 높은 장르였는데, 렘브란트는 길에서 막 걸어 들어온 듯한 평범한 얼굴로 인물을 그렸습니다. S1 1681년 시인 안드리스 펄스는 이를 비꼬았습니다. S1
인용
렘브란트는 그리스의 비너스 대신 세탁부나 토탄 캐는 여자를 모델로 삼고, 이를 '자연의 모방'이라 불렀다. — 안드리스 펄스, 168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설의 영어 번역을 옮김) S1

「자화상 (Self-Portrait - 렘브란트 판 레인, 1660)」: 검은 베레모 아래 얼굴 한쪽에만 빛이 닿고 배경은 갈색 단색입니다. 붓 자국이 두껍습니다.
렘브란트 판 레인, 「자화상」, 1660, 캔버스에 유채, 80.3×67.3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18, 공개 도메인 S15



대표 색
- 배경의 거의 검정
#0C0604 - 어두운 갈색
#281A0E - 옷의 갈색
#473420 - 흰 소매의 밝은 부분
#907755
짝 맞추기 · 왼쪽 다음 오른쪽
2-5구별 포인트
이 절에서 볼 것
같은 시기 남쪽 가톨릭 지역의 그림과는 나라가 다릅니다.
이웃한 그림들과는 어떻게 가를까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독립한 북부 주들을 스페인이 다스린 남쪽과 구별합니다. S1 다만 풍경·정물 전통은 남쪽 도시 앤트워프에도 있었고 S3·S4, 1700년경에는 정물 시장의 지역 구분이 흐려졌습니다. S4 근거 대기 같은 시기 D19 바로크와 가르는 기준은 아직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2-6흔한 오해
이 절에서 볼 것
일상을 그대로 기록한 것도, 카메라로 베낀 것도, 인기를 잃은 화가의 몰락 이야기도 아닙니다.
- "있는 그대로의 일상": 델프트 교회 내부를 그린 화가 에마뉘엘 데 비터는 강단을 빼는 등 장면을 고쳤습니다. S1 풍경화가 판 호연의 구성도 대부분 지어낸 것이고 S3, 페르메이르의 방도 대부분 지어낸 구성입니다. S5
- "카메라 옵스큐라": 작은 구멍이나 렌즈로 바깥 장면을 어두운 방 벽에 비추는 장치에 대해 건축학자 필립 스테드먼은 페르메이르 그림 여섯 점의 원근이 한 방과 한 장치를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S1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월터 리트커는 영감이 되었을 수는 있어도 그 중요성이 크게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S5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 "렘브란트의 몰락": 렘브란트는 1639년 집을 사고 1656년 지불 불능을 선언했지만, 고객이 떠나 몰락했다는 전설은 후기 주문으로 반박됩니다. S6
- "성경 그림은 비쌌다":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화가인 호흐스트라텐은 1678년 "흔해 빠진 역사화가 어디에나 있다"고 썼고, 화상 재고 연구는 값싼 성경 그림의 대량 유통을 보여 줍니다. 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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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썼느냐는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스테드먼은 썼다고 주장하고, 리트커는 그 중요성이 크게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잠든 하녀 (A Maid Asleep - 요하너스 페르메이르, 1656~57년경)」: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조는 여인 뒤로 열린 문 너머 또 다른 방이 보입니다. 앞에 붉은 무늬 양탄자와 과일 그릇, 흰 주전자가 있습니다. 페르메이르는 19세기 말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 남은 작품은 36점입니다. S5
요하너스 페르메이르, 「잠든 하녀」, 1656~57년경, 캔버스에 유채, 87.6×76.5 cm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11, 공개 도메인



2-7무엇을 낳았나
이 절에서 볼 것
정물 시장은 유럽 전체로, 일상 장면은 다음 세기 프랑스로 이어졌습니다.
1700년경 정물 시장은 유럽 전역으로 넓어졌습니다. S4 일상 장면 그림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댕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S2 네덜란드 풍경화는 이후 두 세기 유럽 풍경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S3

이 구름 가득한 하늘이 이후 두 세기 유럽 풍경화가 이어받은 네덜란드 풍경의 한 얼굴입니다. S3
야코프 판 라위스달, 「밀밭」, 1670년경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40.623, 공개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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